임진왜란시 창녕조씨,성산이씨,은진송씨 3인이 험한 바윗틈에서 무성하게 자라 우거진 다래나무 속에서 피난하다가 이곳에 가옥을 짓고 정착하니 마을이 생긴 처음이며 현재 위3성의 후손은 한 집도 없고 대성을 이루고 있는 청주한씨는 1900년대 경에 가천에서 태이가, 밀양박씨는 경림이, 1730년대에 전입하였다. 동명은 이 근처에서 처음 생긴 마을이라서 도음도자를 머리로하여 도곡이라 하였다고 하나 다른 설로는 크고 작은 돌이 많이 있는 곳이라서 돌골이라 하였다고 한다.
행정(杏亭) : 임진왜란시 창녕조씨,성산이씨,은진송씨 3인이 험한 바윗틈에서 무성하게 자라 우거진 다래나무 속에서 피난하다가 이곳에 가옥을 짓고 정착하니 마을이 생긴 처음이며 현재 위3성의 후손은 한 집도 없고 대성을 이루고 있는 청주한씨는 1900년대 경에 가천에서 태이가, 밀양박씨는 경림이, 1730년대에 전입하였다. 동명은 이 근처에서 처음 생긴 마을이라서 도음도자를 머리로하여 도곡이라 하였다고 하나 다른 설로는 크고 작은 돌이 많이 있는 곳이라서 돌골이라 하였다고 한다. 동명은 합천댐으로 수몰후 이사를 갔지만 (행정1구) 마을 서쪽에 큰 은행나무가 있고 오고가는 사람이 쉬어가는 정자가 있었다. 살구행(杏) 정자정(亭)자를 합하여 행정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