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번역시스템을 이용하여 자동 번역중입니다. 번역이 정확하지 않을 경우가 있습니다.
It is under automatic translation using Google translation system. The result may not be accurate.



개항이후 합천의 행정

1876년의 개항이후 일본은 조선에 대한 끊임없는 정치·경제적 침략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일본은 조선에 대한 침략이 용이할 수 있도록 조선의 정치·경제·사회제도를 근대적으로 개혁하려 했는데, 갑오개혁(甲午改革)이 그것이다. 갑오개혁에서 일본은 조선의 군사제도만을 제외하고 전면적으로 개혁을 시도했다.

지방제도의 개혁은 갑오개혁 최후의 사업으로 추진된 것으로서 1895년 5월 26일에 도제(道制)폐지, 지방제도 개혁 및 지방관제가 공포되어 시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내용은 전국을 23부로 개편하고 종래의 대소의 행정구역을 통폐합, 군으로 획일화하여 각군을 신설 23개 부 밑에 분속시키는 것이었다.

경상도에는 진주부(치소 : 진주, 21군), 동래부(치소 : 동래, 10군), 대구부(치소 : 대구, 23군), 안동부(치소 : 안동, 16군) 등 4부 70군이었다. 합천군과 초계군, 그리고 삼가현이 삼가군으로 개편되어 진주부 관할이 되었다.

23부제는 광무개혁시기에 다시 도제로 환원되었다. 서울인 한성부 이외의 지역을 13도로 개편하고, 그 밑에 7부, 1목, 231군을 두었다. 부·목·군은 5등급으로 나누었다. 경상남도에는 진주에 관찰사를 두는 1부 23군이 되었으며, 현재의 합천은 합천군·삼가군·초계군이었는데, 진주부 관하에 있었다. 합천군은 3등군, 초계군, 삼가군은 4등군이었는데, 1914년 초계군, 삼가군을 합천군에 병합하고 신원면을 거창군으로 이속시켰다.

한말의 의병전쟁과 합천

일본이 조선에 행한 경제적 침탈은 조선의 농민을 처지를 더욱 어렵게 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조선을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각계각층에서 끈질길 항쟁은 의병 전쟁으로 나타났다. 이 때의 의병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진다. 처음은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에 자극 받아 일어난 을미의병(乙未義兵)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때는 종전에 갑오동학농민전쟁에 참여했던 농민들이 많이 가담했고, 그 지휘자는 대부분 지방의 명망있는 유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위정척사(衛正斥邪)를 내세우면서 일본군과 일본거류민을 공격대상으로 삼았으며, 지방관아를 습격하여 단발을 강요하는 친일수령을 처단했다.

두 번째 시기는 러일전쟁이후 을사조약이 체결되는 과정에서 일제의 침략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자 의병전쟁이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어 독립국가로서의 면모가 없어지고 국권상실의 위기를 당하자 무장항쟁이 보다 격렬하게 전개되었는데, 이것이 병오의병(丙午義兵:1906)이다. 이 시기에는 경상도에서 신돌석(申乭石)과 같은 평민의병장이 등장하기도 했다.

세 번째 시기는 정미의병(丁未義兵:1907)이다. 고종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을 계기로 의병의 활동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해산된 군인이 근대적 무기를 가지고 지방에 내려가 의병에 가담함으로써 의병부대의 규모가 커지고 무장과 조직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제 의병은 유생과 군인, 농민, 상인, 광부, 포수 등 각계각층을 포함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하에 합천에서도 의병활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합천군 쌍백면 출신 유생 정재규가 진주지방을 중심으로 일어난 노응규 등과 더불어 봉기에 참여했다. 1896년 2월 19일 노응규는 동지 서재기, 정도현, 박준필, 임경희, 성경장 등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진주성을 점령하고 순검(巡檢)들을 붙들어 처단, 무기고를 접수했다. 이를 전후하여 정한용은 지방 의병을 모집하여 입성하니 병력이 더욱 증가되었고, 여기에 다시 전 찰방(察訪) 오종근과 전 수찬(修撰) 권봉희 및 유생 정재규 등이 가담하여 진주 일대는 의병 병력으로 뒤덮혔고 그 수는 1만 명에 이르렀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행되자 정재규는 단성군의 권재규 등과 함께 함양의 남계서원에 모여 최익현, 민종식 등과 서로 상응하여 창의하기로 약속했으나 거사 전에 발각되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기도 했다.

정미의병 시기의 합천지역 의병활동을 보면 김동신, 유종환, 이규철, 문태익, 신 아무개 등이 거창, 안의, 장수, 무주, 합천지역에서, 김황국도 지리산을 근거지로 하여 산청, 함양, 하동, 삼가, 합천, 단성지방에서, 박계장은 해인사방면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합천군 대병면 쌍암 출신의 권석도는 승지 김동신 장군의 창의에 호응하여 지리산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만족도 조사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시나요?

평가:

※ 참고로 만족도조사에 제출하신 의견은 홈페이지 운영의 참고자료로 활용하며, 답변이 필요한 민원이나 문의글은 전화문의, 군민의소리 등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담당자
합천박물관 (☎ 055-930-4882)
최종수정일 :
2019.06.27 16:1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