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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나라 다라국

작성일
작성자
관광진흥과
조회수:
10664
이 스토리텔링은 '신비의 나라 다라국'에 대해 합천군 문화관광해설사
김종탁 선생님이 만든 이야기 입니다.

가락국(금관가야) 이시품왕(? ~ 407년)이 급하게 어전회의를 소집하였다. 
문무백관들이 모두 놀라서 어전으로 집결하였다. 요즘 그렇지 않아도 나라 안팎으로 
어수선하던 차에 왕의 부름을 받으니 모두들 사뭇 긴장된 표정들이었다. 왕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무거운 입을 열었다.

“경들도 알다시피 요즘 이웃 신라가 우리와 왜가 교역하는 것을 시기하여 무역선을 
공격하는 일이 잦아졌소. 
신라가 이렇게 우리들을 방해한다면 이들을 응징하는 것이 마땅하나 당장은 우리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루트가 필요하오. 마침 최근에 북쪽의 반로국
(대가야의 전신?, 3한 시대 변한 12국 중의 하나)이 어쩐 일인지 잘 바치던 세곡을 잘 
보내주지 않으니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소. 
그래서 북쪽 강가(낙동강)의 백성들을 우리가 직접 관리했으면 하는데 경들의 의견은 어떻소?”

신하들은 모두들 찬성하였으며 북쪽 강가를 평정할 적임자로 둘째 왕자를 꼽았다. 
둘째 왕자가 이를 수락하며 말했다.

“아바마마, 소자가 기꺼이 가겠나이다. 우리에게 세곡을 바치던 반로국이 조금 컸다고 
자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소자에게 군사와 철기 장인을 딸려 보내주시면 이참에 북쪽 강가에 안정적으로 물자를 
공급할 수 있는 땅을 개척하겠습니다.”    

왕자가 그렇게 말하자 모였던 문무백관들이 모두 기뻐하였고 왕도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왕자가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 고맙구나. 군사와 물자를 내어줄 것이니 아무쪼록 좋은 
성과 있기를 바란다.”

이에 왕자가 분부 받들겠다고 하며 앞으로 나와 큰 절로 하직인사를 하였다.

일단의 기마군단이 강변 백사장에 자리를 잡고 가쁜 숨을 몰아쉰다. 
기병들의 얼굴에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낙동강을 북상하여 며칠 동안 숨 돌릴 겨를 없이 달려왔기 때문이다. 
왕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앞에는 깊은 강물이 흐르고 있고 강 뒤쪽에는 천길 절벽이 몇 백보는 되어 보였다. 
하나의 산맥이 굽이굽이 뻗어 내려오다가 강변에 와서는 야트막한 봉우리를 이루면서
그 주변을 둘러싸고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마을 동쪽으로는 산자락이 또 하나 뻗어내려 왔는데 그 산 줄기가 마치 이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었다.
 강 건너 맞은편 남쪽 산들도 마치 구름이 낮게 깔린 듯 나지막한데 그 중의 큰 산 하나는 
부처님의 모습을 닮았으며 또 하나의 봉우리는 한 마리 학이 앉아 있는 듯하였다.

아! 이곳에 자리를 잡아야겠다!

왕자는 군사들을 불러 모아 이곳의 산세가 수려하고 외적을 방어하기가 좋아 이곳에
터전을 마련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하자 군사들도 모두 찬성하였다. 
이에 왕자와 지휘관들은 마을을 찾가 주민들에게 그들이 가락국(금관가야)에서 왔음을 알렸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이곳은 ‘다라’라는 마을이었다. 
왕자는 이 다라 마을에 성을 쌓아 주민들을 잘 보살피고 함께 살면서 마을을 융성시키면 
어떠하겠느냐고 묻자 백성들도 모두 기뻐하며 쾌히 그 말에 따르겠다고 하였다.
 
이윽고 군사들과 주민들이 합세하여 성을 축조하였는데 흙과 돌을 섞어서 토루(제방,흙벽)와 
성벽을 쌓고 성벽 동쪽에는 성문을 내고 성의 남쪽 강변에 있는 나루를 큰 배가 정박할 수 
있도록 확장하였다.
 성의 안팎에는 주민들이 생활할 수 있는 가옥과 물자를 생산할 수 있는 각종 시설을 갖추어 나갔다. 
이렇게 성의 살림살이가 체계를 갖추게 되자 본국인 가락국에 연락하여 군사들의 
식솔과 물자 생산에 필요한 장인들을 불러오니 이 마을이 이전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로 
붐비게 되었다. 
왕자는 이곳에서 철광산과 옥석광산 등을 확보하고 철제품을 만드는 대장간, 옥과 구슬을 
생산하는 공방, 토기를 굽는 가마를 지어 본국에서 필요로 하는 물자를 생산하여 공급하게 되었다.

다라 마을이 점점 확장되고 발전하는 가운데 본국에서 전해져 오는 소식은 절망적이었다. 
가락국 이시품왕이 신라가 왜와의 교역을 방해하는 것을 보다 못해 가락국을 비롯한 가야제국과
왜의 용병들을 이끌고 신라의 국경을 공격하였는데, 수세에 몰린 신라 내물왕이 고구려
광개토대왕에게 구원을 요청함으로써 전세가 역전되었다는 것이다.
 
만주벌판을 호령하던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철기병과 보병 5만이 신라를 돕기 위해 남하하자 
가야와 왜의 연합군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신라 남거성(지금의 문경?)에서 교전하여 대패하고, 신라 왕성을 포위하고 있던 아군도 대패하여
 낙동강을 건너 퇴각하였다. 
그러나 광개토대왕의 군대는 여세를 몰아 낙동강을 건너 가락국을 공격하였다. 
퇴각하던 아군은 연전연패하면 쫓기다가 종발성으로 몰려 성안으로 들어갔다. 
고구려 군대가 성을 포위하고 계속 공격하자 결국 성안에 농성하던 가야·왜 연합군은 
성문을 열고 항복하게 되었다.
 
다라 마을을 다스리던 둘째 왕자는 본국의 급박한 소식을 접하면서도 너무나 빨리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기 때문에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못한 채 다만
 안타까워 할 수밖에 없었다. 
이시품왕은 고구려 군대에 항복하였고 결사항전을 주장하던 왕족과 귀족, 군사들과 백성들은 
일부는 왜의 패잔병들과 함께 바다 건너 왜로 건너가고, 일부는 낙동강을 따라 북쪽으로 피난길을
 떠났다. 
낙동강의 북쪽에는 둘째 왕자가 개척한 신도시가 있다는 희망을 품고서.

낙동강을 따라 북상하다가 서쪽에서 합류하는 황강을 따라 계속 나아간 피난민들의 눈에 
강변의 웅장한 토성이 보였다. 
나루에 배를 대고 피난민 일행이 성으로 들어가니 기다리고 있던 둘째 왕자와 그 지역 주민들이
 일행을 눈물로 반겨주었다.

둘째 왕자는 일행을 위로하고 난 후 마을의 회의장이 있는 광장으로 가서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제 가락국은 몰락하였습니다. 우리는 다시 가락국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곳에 다라국이라는 새 나라를 세워서 힘을 길러 빼앗긴 고토를 회복하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모두들 힘을 모읍시다.”

모든 사람들은 희망에 찬 결의를 다지고 그 자리에서 둘째 왕자를 다라국의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꿈에 부풀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군대가 휩쓸고 간 남부 지방은 이후 백제와 신라가 고구려에 대항하여 
나제동맹을 맺으면서 정세가 완전히 변하게 되었다. 
백제와 신라는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하느라 가야지역에 대해서는 군사적인 위협을 가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러한 틈을 타서 다라국은 관제를 정비하고 군대를 양성하였으며 금제품, 철제품, 유리와 
옥제품 등을 생산하면서 백제, 신라는 물론 왜와도 활발한 교역을 하여 점점 나라의 힘을 
키워 나갔다. 

주변 가야제국에서는 종주국인 가락국 후예들이 새 나라를 세우고 부강하게 만들었다고 
칭송하고 따르니 다라국은 가야제국 중에서도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541년 백제 성왕이 사비에서 가야를 부흥시키겠다는 회의를 소집하였다. 
가야제국의 왕이나 왕자, 그리고 신하들이 이 회의에 참여하였다. 
다라국에서는 하한기 이타를 파견하였다. 
성왕은 가야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백제와 가야, 왜가 동맹을 강화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대해서는 가야제국의 대표자들도 이의가 없었다. 
그런데 544년 백제 성왕이 다시 사비에서 회의를 소집하였는데 왜의 용병을 가야에 
주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회의에는 다라국의 이수위 흘건지가 참여하였는데 가야의 대표자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가야의 제일 큰 위협세력인 신라에 대항한다는 측면에서는 필요할지 모르나 백제와 가장 
친숙한 왜의 용병을 자기들의 나라에 둔다는 것은 또 다른 위협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서였다. 
결국 성왕의 제의에 대해 가야 대표자들은 반대의 뜻을 표하고 회의는 큰 성과 없이 결렬되었다. 
그렇지만 성왕은 가야와는 동맹관계를 지속해야 했으므로 가야의 대표자들이 돌아갈 때 중국의 
최신 문물들을 선사하였다.

553년 백제의 성왕이 한강유역을 가로챈 신라를 응징하고자 군사를 일으켰다. 
우방인 백제를 도울 수밖에 없었던 가야제국은 이 전쟁에 지원군을 파견해야만 했다.
다라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백제를 지원하기 위한 군대가 성문 앞에 집결하였다. 그 수는 
수천 명이나 되었다. 
군사들의 가족들은 모두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였다. 
왕이 큰 소리로 말했다.

“이번 전쟁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이기면 우리는 신라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군사들이여, 백제의 성왕을 도와서 용감하게 싸워 이기고 돌아오라.”

군사들이 만세, 만세, 국왕폐하 만세 하는 함성으로 화답하였다. 군사들은 자욱한 먼지를 
남기고 전장으로 떠났다.

군사들이 떠난 후 다라국 사람들의 모든 관심은 이 전쟁의 성패에 모아졌다. 
그러나 군사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다. 전장에서는 백제 성왕이 전사하고 백제 
가야, 왜의 연합군이 전멸하였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왕은 깊은 시름에 잠겼다. 이제 우리나라의 주력군이 전멸했으니 이 나라의 장래는 누가 
보장해줄 것인가. 
아버지, 남편, 자식을 잃은 저 백성들은 또 어떻게 할까. 성안에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통곡소리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다라국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 .   
       

만족도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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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9.05.03 14:3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