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늪지에 들어서자 습한 공기 속에 연꽃 향이 스며든다.
폭우가 지나간 자리, 연못 위에는 굵은 빗방울 자국이 아직 남아 있다.
그 위로 연꽃들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무거운 빗물에도 꺾이지 않은 줄기, 넓게 펼쳐진 꽃잎 위에서 물방울이 또르르 굴러내린다.
가운데선 흰뺨검둥오리가 연잎 사이를 부드럽게 헤엄친다.
연잎 가장자리가 살짝 흔들리고, 그 아래 숨어 있던 작은 물고기들이 흩어진다.
햇빛이 구름 틈으로 잠시 스며들자, 물 위의 초록과 분홍이 한층 선명해진다.
연꽃 사이로 쇠물닭이 재빠르게 움직인다.
짧은 날개를 펄럭이며 연잎 위를 건너뛰고, 빗방울이 튄다.
붉은 이마판이 꽃잎 색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다.
순간 연못 한쪽이 고요해지고, 그 고요 속에서 숨소리와 물결 소리가 또렷하다.
연못가 진흙 위, 남생이가 있다.
등껍질은 비에 씻겨 반짝이고, 발끝엔 진흙이 촘촘히 묻어 있다.
천천히 한 발씩 내딛으며, 연못 쪽으로 방향을 튼다.
그 느린 걸음이 오히려 연못 전체의 시간을 늦추는 듯하다.
주변에는 빗소리가 남긴 잔향이 가득하다.
연잎 위에 남은 물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톡’ 하고 울린다.
바람이 불면 수련 잎들이 살짝 들썩이고, 그 사이로 햇빛이 반사된다.
여기서는 생명이 특별한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다.
연꽃이 폭우 뒤에도 피어 있는 모습,
오리가 그 사이를 조용히 지나는 모습,
남생이가 물로 향하는 발걸음 자체가 이유가 된다.
돌아서는 길, 연못 위 파문이 천천히 사라진다.
그 속에 오늘 본 생명들이 오래 남기를,
어디에서든 다시 피어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