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의 햇살이 물결 위에서 은빛으로 부서지며, 나무섬 아래로 드리운 그늘이 아늑하게 번진다. 연꽆잎 사이를 스치는 바람은 한결 부드러워졌고, 그 속으로 중대백로가 길고 고운 발걸음을 옮긴다. 긴 목이 물가를 훑을 때마다, 늪의 숨결이 잔잔히 일렁인다.
그 옆, 물속에서 황금빛 등이 반짝이며 금개구리가 뛰어오른다. 작은 물방울들이 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고, 그 파문은 나무섬 쪽으로 천천히 번져 간다.
그곳, 나무섬의 짙은 그늘 아래에는 흰뺨검둥오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까만 깃털 위의 하얀 뺨이 서로의 얼굴을 부드럽게 비추며, 느릿느릿 깃털을 다듬는다. 한 마리는 부리를 물속에 담그고, 다른 한 마리는 날개 끝을 털며 오후 햇살의 남은 따뜻함을 즐긴다. 그들은 서두르지 않는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평화로운 자리가 바로 이 나무섬 그늘 아래인 듯,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인다.
늪은 말없이 이 풍경을 품고 있다. 중대백로의 속삭임, 금개구리의 숨결, 그리고 흰뺨검둥오리들의 고요한 호흡이 한데 모여, 계절의 첫 가을빛을 완성한다. 인간이 손대지 않은 이 작은 세계 안에서, 서로의 존재가 곧 안식이 되고 시간마저 느려진다.
가만히 바라보면 깨닫게 된다. 자연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거창함이 아니라, 이렇게 사소하고도 완벽한 순간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은, 우리가 지켜낼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내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