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정양늪은 마치 오래된 시집의 마지막 장을 펼쳐놓은 듯하다. 붉게 물든 메타세콰이어 길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서 있으면서도, 그 잎사귀 하나하나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은은한 빛을 흩뿌린다. 그 길을 걷는 발걸음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삶의 깊은 울림을 찾아가는 순례와도 같다.
늪가에 서 있는 왜가리는 고독을 품은 철학자처럼, 긴 목을 세우고 세상의 흐름을 묵묵히 바라본다. 그 옆에서 흰뺨검둥오리들이 물결 위를 스치며 남기는 흔적은 잔잔한 시구처럼 마음에 스며든다. 그들의 유영은 소란스럽지 않다. 오히려 고요 속에서 울려 퍼지는 작은 음악처럼, 인간의 마음을 다독이고 위로한다.
정양늪의 가을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며, 잊고 있던 본래의 나를 되찾게 하는 길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은 삶의 덧없음을 일깨우고, 떨어지는 낙엽은 내려놓음의 미학을 가르친다. 그 길을 걷는 동안, 우리는 치유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이렇게 눈앞의 풍경 속에서 조용히 스며드는 것임을 깨닫는다.
걷다 보면 마음은 점점 비워지고, 그 빈자리에 자연의 숨결이 들어온다. 도시의 소음과 분주함 속에서 잊고 있던 본래의 나를 되찾게 되는 순간이다. 정양늪의 가을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당신은 지금 충분히 쉬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이 주는 위로에 감사하게 된다.
정양늪의 가을은 단순한 계절의 풍경이 아니라,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다시 살아갈 힘을 주는 치유의 공간이다. 메타세콰이어 길을 걸으며 철새들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연과 하나가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진정한 평화와 위안을 경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