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자락, 정양늪은 황금빛 갈대의 바다
바람에 흔들리며 저물어가는 태양을 품는다.
붉게 물든 단풍은 마지막 불꽃을 피우고,
물 위에 떨어져 잔잔한 파문을 남긴다.

겨울은 이미 문턱에 서서
차가운 숨결로 늪을 감싸 안는다.
서리 내린 풀잎은 은빛으로 빛나고,
물새의 날갯짓은 더디고 무겁다.

낮은 구름은 하늘을 낮추어  
늪과 하늘이 하나로 이어지고,
고요 속에 들려오는 소리는
바람과 물결이 속삭이는 오래된 이야기.

정양늪은 계절의 경계에서
가을의 따스함과 겨울의 고요를 함께 품는다.
그 사이에 서 있는 나의 마음도
낯선 그리움과 잔잔한 평화를 오간다.

시간은 흐르고, 늪은 변하지만
그곳의 풍경은 늘 같은 듯 달라서
한 번의 계절이 끝날 때마다
새로운 시작을 예고한다.
  
가을과 겨울 사이, 정양늪은
잠시 머무는 영원의 자리.
그곳에서 나는 계절의 숨결을 듣고,
내 안의 계절 또한 천천히 바뀌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