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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을 중시한 남명 조식

작성일
2012-12-16 16:56:07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5498

남명 조식

남명 조식

남명 조식(1501~1572)은 조선 시대 경상우도의 대표 선비다. 예(禮)와 인(仁)을 앞세운 경상좌도 대표 선비 퇴계 이황(1501~1570)과 쌍벽을 이루며 경(敬)과 의(義)를 앞세우고 실천을 중시했다. 남명은 당대에 벼슬살이는 않고 초야에서 후학을 기르고 곧은 소리 상소를 올려 이름을 떨쳤다. 그는 여기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 외갓집에서 태어났다.

 남명 조식

남명은 1558년 음력 4월 지리산을 둘러보고 남긴 <유두류록(遊頭流錄)>에서 산을 오르는 힘듦과 산을 내려오는 손쉬움을 생각하며 선(善)을 쌓기는 산을 오름과 같고 악(惡)을 행하기는 산을 내려옴과 같다는 말을 했다. 이처럼 그이는 작은 일 하나를 하면서도 선악의 구분과 경의의 일어남을 마음에 담았다. 이런 태도는 그가 떠난 뒤에도 제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제자들이 1592년 임진왜란을 맞아 대부분 의병으로 떨쳐 일어나면서 실천을 중시했던 그이 이름이 한 번 더 크게 울렸는데 그 가운데 대표가 바로 최초 의병장 곽재우(의령)와 광해군 시절 높은 벼슬에 올랐던 정인홍(합천)이다.

한 시대를 곧게 살다 간 남명의 이런 영향은 시대를 뛰어넘어 근대에도 여전했던 모양이다. 그가 태어난 고장 이 곳 삼가에서 1905년 을사늑약 이후 1910년 경술국치까지 많은 의병이 나온 데 더해 1919년 3·1만세운동 당시는 무려 3만 명이 참가해 음력 2월 17일, 22일 두 차례에 걸쳐 시위가 벌어졌다. 40명 가량 목숨을 잃고 150명 남짓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으며 50명 정도 끌려가 옥고를 치렀는데, 우리나라 가장 큰 만세 시위 가운데 하나로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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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9.07.10 13:3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