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번역시스템을 이용하여 자동 번역중입니다. 번역이 정확하지 않을 경우가 있습니다.
It is under automatic translation using Google translation system. The result may not be accurate.



[문화관광] 제3회 합천박물관 학술회의 토론 정리

작성일
2013-11-09 18:33:29
작성자
조원영
조회수:
4766
담당자 연락처:
  • 보조자료용_사진.JPG(677.3 KB)

옥전 23호분 금동장관모

옥전 23호분 금동장관모

학술회의의 꽃은 역시 토론입니다.
토론자들의 열띤 토론을 통하여 청중들은 학술회의의 내용을 더 쉽게 이해하고 
보다 새로운 사실들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번 제3회 합천박물관 학술회의 토론을 정리하여 올립니다.
한 번 읽어보시면 이번 학술회의의 의미를 좀더 잘 아시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제3회 합천박물관 학술회의의 본 발표가 끝나고 나서 
경상대학교 조영제 교수가 회의를 이끌어가면서 종합토론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학술회의 발표자료집에 담긴 개별 토론자들의 
모든 질의에 대한 상세한 토론은 없었지만 
다라국의 위상에 관련한 토의는 상당히 심도 있게 이루어졌다.

먼저 영남문화재연구원 박승규 원장의 지정 토론자로 나선 
대구한의대 김세기 교수는 후기가야의 국가체제를 연맹체로 보는 박승규 원장과는 달리 
대가야가 고대국가에 이르렀다고 보는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면서, 
‘발표자는 옥전고분군에서 6세기 1/4분기 M4호분 단계에서 
대가야양식의 수혈식 석곽이 축조됨으로써 
다라국의 독자성이 약화되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다라국의 독립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독자성이 약화되었다는 상태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상황인지 설명해달라’고 질문하였다.

이에 대해 박승규 원장은 ‘6세기 이전에는 다라국이 대가야와는 별개로 창녕을 통하여 
신라와도 접촉하면서 독자적으로 대외관계를 맺었는데 비해, 
6세기 1/4분기가 되면 대가야와의 관계 속에서 대외적인 교섭을 하고 있어 
외교적인 측면에서 다라국의 독자성이 다소 약화되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으로 토론에 나선 합천박물관 조원영 학예실장은 
발표자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였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가야연맹체의 성격은 어떠했으며 다라국이 대가야연맹체의 일원이었다면 
같은 합천지역에서 남쪽에 있던 삼가의 가야세력과의 관계는 어떠했는가. 

둘째, 우륵 12곡 가운데 하가라도를 쌍책이라고 한다면 
어째서 대가야연맹체 내에서 더 강력한 국가였던 
고령 가라국의 이름으로 생각되는 상가라도보다 먼저 서술되어 있을까. 

셋째, 가야 여러 나라의 위치를 비정할 때 현재의 지명과 
기록에 남아 있는 나라이름과의 음의 유사성으로 판단하기 보다는 
유력한 고분군이 있는 지역을 우선시해야 할 것인데, 
합천의 초계지역과 의령의 부림지역은 유력고분군도 존재하지 않지만 
음의 유사성 때문에 여러 학자들은 국가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배자 집단의 존재를 뚜렷이 보여주는 삼가고분군의 경우는 국가체로 볼 수 있는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해 박승규 원장은 ‘자료가 부족하여 정확하기 답변하기는 어렵지만 
다라국과 삼가 세력은 별개의 세력임이 분명하고, 
삼가고분 발굴조사 결과 부장된 토기의 형식에서 
대가야 세력이 삼가지역까지 진출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이때 대가야 세력이 삼가지역으로 진출한 루트는 
쌍책의 다라국을 통해서가 아니라 반계제고분군이 조성된 
합천군 봉산면 지역을 거쳐서 침투한 것으로 본다’고 하여 
다라국과 삼가 세력의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은 고려하지 않았다.

둘째 질문에 대해서 다나까 도시아키 사가현립대 교수는 
‘우륵 12곡의 곡명을 보면 하가라도, 상가라도의 순서처럼 
기물이라는 지역도 하기물이 상기물보다 먼저 표기되어 있다. 
이것을 보면 세력의 크고 작음에 따라 곡명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기준의 배열인지는 알 수 없는데 악곡의 이름이기 때문에 
상, 하의 선후가 바뀌었다고 해도 큰 문제가 될 것은 
없을 것 같지만, 역시 사료가 이것밖에 없기 때문에 단정하기는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또 세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조영제 교수가 
‘삼가고분군을 축조한 세력은 확실히 하나의 국가를 이룬 세력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발굴 조사한 고분은 모두 삼가고분군의 변두리에 있는 무덤이므로 
중심 지역의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야 좀더 정확한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다나카 도시아키 교수는 ‘삼가 세력은 분명히 우륵 12곡 가운데 
그 국명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하면서 지명 비정의 문제에 대해서는 
‘지명과 고분군이 함께 연결되면 더없이 좋겠지만 고분군은 중심지가 이동하면 
같이 이동하게 되므로 그럴 경우 옛 지명과 고분이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음운 상의 유사성으로 지명 비정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다라국의 위상에 대해서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류창환 센터장은 
무장의 성격을 분석하면서 다라국은 성립기부터 강력한 무장을 완비했는데 
옥전 23호분 단계의 무장에 비견할 만한 대가야의 고분이 같은 시기에 있는지에 대해 질의하였다. 

이에 대해 부산대학교 김두철 교수는 
‘대가야지역의 고분군에서 옥전 23호분과 같은 시대에 해당되는 고분은 
현재까지는 없으며 대가야 고분에서 무장이 완비되는 것은 그보다 늦은 시기이므로 
무장에 있어서는 다라국이 대가야보다 더 빨리 완비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답변하였다.

마지막으로 부산대학교 선석열 교수는 
‘<가야>라는 용어가 가야가 존재하던 당시의 국가이름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 경남 일대에 있었던 나라들은 ○○가야라고 전하는 것은 
당시의 사정과는 다르므로 적합한 용어를 사용해야 할 것이고, 
대가야연맹체라는 용어도 재고해보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다나카 교수가 
‘가야 당시에도 광개토대왕비문에 임나가라라는 국명이 나오므로 
가야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큰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답하였다. 
또 조영제 교수가 연맹체라고 하는 용어의 개념에 대해서 질의한 데 대해서는 
‘일종의 연합으로 보면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아직까지는 옥전고분군을 조성했던 다라국의 위상에 대해서 완전한 결론을 제시하기에는 
연구 성과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다라국의 실체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다라국이 주변 국가와 관련을 맺었던 
대가야연맹체의 성격이 좀더 분명해져야 한다. 
즉 가야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인 
연맹체설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히 전개되어야 한다. 
이번 학술회의는 완전한 결론은 아니지만 
대가야연맹체내에서 다라국의 위상이 대가야와 함께 2대 중심국이었으며 
외교적인 부분에서 약간의 자율성은 잃었지만 
묘제에서 나타나듯이 여전히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었던 
가야의 왕국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만족도 조사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시나요?

평가:

※ 참고로 만족도조사에 제출하신 의견은 홈페이지 운영의 참고자료로 활용하며, 답변이 필요한 민원이나 문의글은 전화문의, 군민의소리 등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담당자
합천박물관 (☎ 055-930-4882)
최종수정일 :
2024.04.18 13:3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