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은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과 크기나 착의법 그리고 표현양식이 거의 동일하여 시대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고 여겨진다. 다만 세부적인 표현과 제작(속파기) 기법 상의 미세한 차이, 과학적 분석 결과 등을 참고할 때, 법보전의 상보다는 조금 늦은 시기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진다. 다만 1167년을 하한으로 볼 수 있는 발원문이 복장에서 발견되어 이 불상이 늦어도 고려 1167년 이전에 제작된 상임을 알 수 있다.
1167년 이 지역 유력 세력이었던 사씨(史氏)와 국가 차원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중수, 고려 14세기 후반에 화살 명장(名匠) 송부개(宋夫介)의 중수 참여, 그리고 1490년 조선 왕실 주도로 이루어진 개금중수 사실만으로도 한국조각사에서 중요한 불상이다.
또한 이 불상에서 발견된 복장유물은 현재까지 불상에서 발견된 복장유물 중 최대·최고 수준이다. 법보전과 동일한 내용의 발원문 2매 외에도 17종의 다라니가 확인되었다.
이 밖에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에는 고려와 조선시대의 섬유류 유물이 함께 복장되었다.
고려시대의 유물로는 요선철릭((腰線帖裏, 허리에 선장식이 있는 철릭), 답호(褡穫), 저고리, 사경낭(寫經囊), 주머니, 직물 편 등 12점이 있으며, 조선시대의 것은 1490년에 납입된 것으로 저고리를 비롯하여 보자기, 오색후혈장엄(五色喉穴藏嚴) 등 다양한 종류로 구성되어 있다. 현전하는 고려시대 복식 유물이 많지 않은 점을 고려한다면 복장유물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요선철릭이나 답호 등은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더불어 1490년에 납입된 홑저고리는 조선 초기의 저고리 유형을 알 수 있어 그 자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