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조식(1501∼1572)의 학문과 사상을 이해하고 추모하기 위하여 그를 향사하고 있던 용암서원의 묘정에 세웠던 비석이다.
용암서원은 1576년 가회면의 회현(晦峴) 아래 세워졌다가 임진왜란 때 불탄 회산서원(晦山書院)의 후신으로, 1601년 봉산면에 세워졌던 향천서원(香川書院)이 1609년 사액되면서 얻은 명칭이다.
이 묘정비는 조선 순조 12년(1812)에 세워진 것으로 가로 80㎝, 세로 180㎝, 폭 25㎝이다. 비의 형식은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 위에 태극무늬의 직사각형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비문은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지었고, 글씨는 당시 삼가현감(三嘉縣監) 오철상이 해서체로 썼다.
이 묘정비는 서적 이외에 용암서원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으로 유일한 것으로서 용암서원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