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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을 보존하기 위해 반영구적 재질인 인청동으로 간행한 동판대장경을 전시한 공간
한국의 대표적인 미디어아트 작가 이이남 작가가 대장경의 지혜를 디지털로 재해석한 공간
팔만대장경 50가지 본생경 이야기를 그림동화와 디지털 영상으로 만날 수 있는 공간
한국, 중국, 일본, 티벳 등 시대별, 지역별로 만들어진 세계의 다양한 대장경 체험공간
붓다의 깨달음이 경전으로 기록되어 우리나라로 전해져온 과정을 소개한 과정
팔만대장경 제작과정을 만날 수 있으며 조판 전 과정과 여러 기록물, 이운행렬 과정 등을 전시한 곳
팔만대장경이 해인사로 옮겨진 후 약 800여 년 동안 보존 가능하게 한 과학적인 비밀을 전시한곳
읽고 이야기하고 따라 써보고 5종묘행을 실천할 수 있는 공간(대장경윷놀이, 모래필사, 조판놀이 등 체험가능)
기록문화를 중심으로 한 국제교류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우리나라와 세계의 기록문화를 상설전시하고 있으며 기록문화 관련 기획전시 및 체험 콘텐츠를 설치하여 일반인에게는 기록문화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고 자라나는 학생들에게는 생생한 체험학습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시작으로 고려시대 역사적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조선시대의 역사 문화·예술 등 여러 방면의 중요한 기록문화 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일제강점기 억압받던 민족의 실상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는 여러 장르의 기록문화를 전시한 공간입니다
통일신라시대의 승려 혜초는 당시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걸어갔습니다. 16세에 당나라로 가서 인도의 승려 금강지의 제자가 되었으며 스승의 권유로 인도 구법여행길에서 자신이 본 새로운 세상을 727년 『왕오천축국전』에 담아 사람들에게 전하게 됩니다. 혜초는 구법여행을 할 때 해로와 육로를 번갈아 이용해 거친 나라가 40여 개 국에 이르는데, 오늘날의 인도·이란·터키·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등 여러 나라입니다. 바닷길로 들어가서 땅 길로 돌아온 혜초는 자신의 여정을 기록으로 남겼는데『왕오천축국전』에는 그가 걸었던 수많은 길이 담겨있습니다
『왕오천축국전』우리나라에서 완전한 문헌 형태로 남은 가장 오래된 여행기이자, 8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대해 알 수 있는 유일한 기록입니다. 마르코폴로의『동방견문록』오도릭의『동유기』이븐 바투타의 『여행기』와 함께 세계4대 여행기로 꼽히는데, 『왕오천축국전』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보다 500여 년이나 앞서 저술되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인쇄기술의 발달로 기록을 보다 쉽게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려 전기에는 목판에 글씨나 그림을 새겨 먹물로 종이에 찍어내는 ‘목판인쇄술’이 성행하였는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고려대장경판’이 그대표적인 성과물입니다. 고려인들은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금속활자를 발명했습니다. 1377년에 간행한『불조직지심체요절』은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성서』보다 70여 년이나 앞섰습니다. 금속활자는 쉽게 변형되지 않을 뿐 아니라, 한 자 한 자 만들어 놓고 그것을 조합해 문장을 만들었기 때문에 짧은 기간에 책을 인쇄할 수 있었습니다 금속인쇄술의 발명은 지식의 보급과 기록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금속활자의 발명으로 성장한 기록문화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부흥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역사, 언어, 문학, 그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실용적이면서 역동적인 기록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조선 시대에는 세상을 놀라게 할 위대한 기록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특히 세계 최대 단일 왕조 역사적인『조선왕조실록』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문자인 ‘훈민정음’의 창제 과정이 담긴『훈민정음해례본』조선시대 명장 이순신이 남긴 『난중일기』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일제는 조선인을 일본 왕의 신하 된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 이른바 “‘황국 신민화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우리말과 글’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역사’를 가르치고 배우지 못하게 하며, ‘우리 이름’을 버리고 일본식 이름을 가질 것을 강요하며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말살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모진 탄압에도 불구하고 우리선조들은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용감히 투쟁하였습니다. 국민 계몽과 민족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문자보급운동을 전개했으며, 시와 소설을 비롯한 문학과 언론을 통행 저항운동을 펼쳐 나갔고, 1921년에는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기 위해 조선어학회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은 일제의 총과 칼에 맞서 우리말과 글을 지키며 역사에 위대한 정신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1945년 해방 이후 「조선시보」에서 출발한 「대한늬우스」는 1953년부터 1944년까지 매주 대한민국 정부가 제작하여 영화관에서 상영했던 영상보도 물입니다. 외래어 표기법 개정에 따라 1980년부터「대한뉴스」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며, 제작이 종료된 1944년 까지 총 2,040여 편이 제작되었습니다. 한국 현대사회의 성실한 기록자인 「대한늬우스」는 4·19혁명, 5·16군사정변, 5·18광주민주화운동, 남북회담, 88서울올림픽등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생활사를 역동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광복이후 우리 손으로 우리 삶을 기록한 최초의 영상 기록으로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대한늬우스」는 우리에게 보고 듣고 느끼는 공감각적인 기록여행을 제공하며 그때 그 시절 속으로 들어가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