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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채상헌 천암연암대학 귀농지원센터장(지금 왜 귀농인가?)

“농촌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면 귀농 성공은 힘듭니다. 가장 먼저 농촌의 삶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채상헌 천안연암대학 귀농지원센터장(친환경원예과 학과장)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의 귀농인들이 대부분 실패한 것은 농촌에 대한 사전 이해 없이 귀농했기 때문”이라면서 농촌의 삶에 대한 사전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농촌의 삶과 사회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귀농하는 것은 외국에 이민 가면서 현지 문화와 삶에 대한 파악 없이 가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농촌 삶을 철저히 분석하고 이해함으로써 지역사회에 잘 적응하는 것이 귀농 성공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농촌 주민들이 노력해 일군 지역사회에 귀농인들이 무임승차한다는 시각이 있는 만큼 “농촌사회의 공동체 일원으로 동화될 수 있도록 겸손히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귀농은 자기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농촌 삶에 자신의 가치기준을 맞추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 농촌 삶 속에서의 존재 이유를 납득하고 이해해야만 도시보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농촌의 삶에 적응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경제적인 측면도 아주 중요한 고려 요소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여유롭게 농촌의 정취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를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며 “도시 경험에서 얻은 넓은 시야와 인맥을 농촌에서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데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지자체, 지역민의 역할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그는 “정부는 직접적인 지원보다 정보제공․교육 등을 통해 귀농인들이 농촌생활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돕는데 주력하고, 지자체와 지역민은 농촌 후계인력 양성 차원에서 열린 마음으로 귀농인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출처 : 농민신문

점심 후에는 농부 홍순영의 이야기를 들었다

까무잡잡한 얼굴의 농부 홍순영은 지리산닷컴의 스타다. 그는 이장이 야심차게 발굴한 한국 농업의 아이콘이다. 그는 4만 평이 넘는 논에다, 주변의 잡초에서 추출한 친환경 제재를 이용해 유기농 벼농사를 짓는다.

함께 밥 먹는 모습

그가 생산하는 농산물에는 좋은 먹을거리를 생산하겠다는 농부의 집념과 철학이 배어 있다. 2000년부터 직거래를 시작했고 전국의 300여 가구가 그의 쌀을 먹는다. 전적으로 홍순영이라는 인간에 대한 신뢰에 기반한 구매다. 그는 상품 대신 진정성을 팔고자 한다. 결국 사람이 브랜드다.

2004년에 귀농한 고영문씨에게서 좌충우돌 귀농기도 들었다. 그는 아직 성공한 귀농인은 아니다. 그는 1996년에 주말농장을 시작해 2004년에 전남 구례 피아골에 귀농지를 정하고 들어오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받을 수 있는 귀농교육은 거의 다 쫓아다녔고, 오미자 엄나무 오갈피 등 약초와 콩 잡곡 등 온갖 농작물에 이르기까지 할 수 있는 시도는 거의 다해봤다. 그의 귀농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수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잘 버티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행복하기 때문인가.

저녁은 오미마을 회관에서 먹었다. 푸드 마일리지를 최소화한 식재료, 마을에서 생산된 먹거리로 준비한 밥상이다. 농부 홍순영이 만든 쌀과 운조루 넓은 들에서 재배된 우리밀로 지은 고슬고슬한 밥이다. 반찬은 지리산 고랭지에서 재배된 채소가 주종이다. 이장이 준비한 특별 메뉴 수육도 올라왔다. 그는 서울 연신내 시절부터 부엌에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저녁을 먹고 나서 농부 김종옥이 등장했다. 그는 7천여 평의 감농사를 짓는 감 전업농이다. 지난해 때 이른 첫서리로 감이 피해를 입어 어려움을 겪을 때 지리산닷컴에서 그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때 모니터에 올라온 것은 뜬금없게도 그의 손이었다. 이장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듬직한 김종옥의 손을 잡아 달라고 호소했다.

당초 천 박스가 목표였지만 전부 팔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일반 시장에 정상적인 제품으로 출하할 수 없었던 그의 감은 주문량이 폭주해서 나중에는 물량이 부족할 정도였다. 그렇게 맺어진 특별한 인연이었다. 그가 좋은 농산물을 정성껏 생산해서 보답하겠노라며 참석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흐뭇한 장면이었다.

이어서 이번 모임의 이야기를 위해 권산 이장이 등장했다. 이야기의 주제는 우리 밥상과 종자, 귀농이었다. 1960년대에 32.9%를 차지했던 우리 농업 GDP 수준. 지난 2003년도에는 포괄적 섹스산업 비중인 4%를 밑도는 절망적인 상황까지 왔다며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밀로 상징되는 희망의 끈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세계화 체제 밑에서 농민은 값비싼 종자와 화학물질을 구입해야 하는 소비자일 뿐이라는 인도의 환경운동가 반다나 시바의 말을 인용하며 종자주권 없이 결코 우리 농업이 없다고 했다. 귀농 부분에서는 소통을 강조했다. 많이 배우지 못했다고, 시골에 산다고, 그렇게 대우받지 못하는 것이 습관이 된 분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비로소 귀농에 성공할 수 있다고. 그가 지난 몇 년간 농촌 체험에서 터득한 지혜다.

출처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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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농정과 귀농귀촌담당 (☎ 055-930-3945)
최종수정일 :
2019.08.22 16:2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