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늪 미래 이야기
올해 유난히 비가 많은 것 같다.
황금 들판 기대하는 가을에 장맛비가 잦다.
식물도 많은 비는 싫어할 테고, 따가운 햇살이 그리운 과일도 반기지 않을 텐데,
누가 좋다고 살갑게 오는지 모르겠다.
자연이 기교를 부리는 걸까? 동상이몽일까?
바람 불어 누구는 좋은 날 되고, 누구는 나쁜 날 되듯이.
강추에 덕본 사람도 있고, 고달픈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도 있다.
자연은 현상 그대로 일 뿐이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유불리有不利가 따르니 최적의 날씨를 우리는 원한다.
정양늪 관람객을 위한 산책로 위에 ‘쿨링포그’를 설치했다.
과연 늪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것일까?
늪에 타감작용이 일어나도록 그대로 두면, 아니 방치하면 늪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늪도 살고, 우리도 사는 윈윈(win win)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많이 찾으니 동물들이 늪을 떠난다.
그렇게 많이 보이던 수달 똥, 간만에 보니 너무나 반갑다.
‘맴맴 매미‘라는 주제로 생태학습을 했다.
여름을 알리는 나팔수인 매미는 한평생을 준비하고 반짝 살다가 죽는다.
수컷이 목청 껏 울어 짝짓기에 성공하면, 암컷은 나무줄기 속에 알을 낳는다.
다음 해에 유충(매미 애벌레)되어 땅속에서 오랜 기간 굼벵이로 지내게 된다.
여러 차례 변태를 거듭한 인고의 세월을 견뎌 내면,
지상으로 나와 식물에 매달려 껍질을 벗고(우화) 성충이 된다.
하지만 매미의 모습으로는 짧게 살다가 짝짓기를 하고 생을 마감한다.
굵고 짧게 사는 삶이니, 매미의 숭고한 삶이 충만할 수 있도록
아름다운 노래를 경청해주고, 사랑해 주어야 한다.
학습 후 정양늪 관찰에 나섰다.
이틀 전 소낙비 폭격을 받은 연잎은 부유식물 되어 물 위에 떠있다.
잠자리도 앉을 곳 없어 산으로 가버리고, 흰뺨검둥오리도 처진 연잎 사이를 비집느라 힘들어 한다.
가을 하늘 요란한데 눈 둘 곳이 별로 없다.
귀한 금개구리 찾으려 휘젓던 눈이, 어이없이 물 위에 내려앉은 청명한 하늘에 놀란다.
연잎이 비켜간 자리에 하얀 뭉게구름과 파란 하늘이 앞 산 까지 데려와 노니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넋 놓고 바라보고 있으려니, 팔뚝만한 잉어 질투가 나는지 휘젓고 가버린다.
일행은 저만치 앞서가는데 금개구리 찾는다고 여념이 없다.
내리쬐는 따가운 뙤약볕을 헌팅캡으로 막아보지만, 손오공이 부처님 손바닥에서 노는 격이다.
어린 금개구리 봤던 위치에서 눈 빠지게 내려다본다.
데크의 이쪽저쪽, 위쪽과 아래쪽을 샅샅이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셋방살이 하던 가시연도 어째 보이지 않는다.
자주 띠는 붉은귀거북이가 얄밉기만 하다.
끝내 금개구리는 나타나지 않는다.
저 멀리 앞서가는 일행을 바쁜 걸음으로 재촉하지만, 여전히 늪에서 눈을 뗄 수 없다.
땀 흘리며 따라 잡은 일행은 부유물로 덮여있는 징검다리를 건너지 못해 멍 때리고 서 있다.
그 때 교수님이 무언가를 발견한다.
네발나비 두 마리가 수달의 똥 위에서 무언가를 먹고 있다.
자세히 보니, 노란 긴 입을 빨대처럼 분비물에 꼽고 있는 것이다.
신기해서 가까이 가도, 먹는데 정신 팔려 모른다.
소화되지 않는 동물의 뼈 조각이 보인다.
많이 먹은 비로 인해 소화불량 걸린 늪은 물을 계속 토해내고 있다.
늪이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것이다.
비가 많이 온 탓인지 매미 소리 듣지 못하고, 보고 싶은 금개구리도 찾지 못하고 되돌아온다.
늪의 물이 빠져 나가는 곳에 영역을 구축한 고마리가 앙증맞은 분홍빛 꽃을 피우고 있다.
고마리가 정화시킨 깨끗한 물 위에 수놓은 또 다른 가을 하늘과 뭉게구름이 멋지다.
하지만 이번엔 소금쟁이 두 마리가 훼방을 놓는다.
일행과 또 멀어졌다. 오늘 교수님의 말씀은 죄다 놓치고 만다.
하지만 오늘 꼭 금개구리를 만나고 싶다.
아쉬움에 몸은 앞서가고 눈은 뒤쫓아 온다.
몇 발자국 옮기는데 삿갓 모양을 한 연밥이 구름 풍선 잡고 논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너무나 한가로이 떠 있는 연밥은 ‘염화시중의 미소’ 만큼이나 의미 있어 보인다.
혼자는 외로운지 마름도 박쥐 탈을 쓰고 하늘을 날고 있다.
외로이 떠다니는 모습은 늪의 아픔을 호소하는 듯 하고, 늪을 사랑해 달라는 절규 같기도 하다.
그 모습 병인양하여 가슴이 메어진다.
풀숲에 다소곳이 피어있는 파란 물옥잠으로 위로를 삼는다.
다시 금개구리 봤던 그 자리.
일행을 멀리 보내고, 이번엔 마음 놓고 텔레파시를 보낸다.
'님이여 님이시여 ~ 어쩌라 어쩌라고 ~ 오늘 또 내일 님의 향기 뿐인데’ .
애절하게 외쳐도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늪의 몸살에 잠시 몸을 숨겼는지, 뭇 동물들에 희생 되었는지.
늪에 아쉬움 띄우고 돌아선다.
정양늪 살리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행정적인 뒷받침이 있어 잘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데크를 놓고, 쿨링포그를 설치하는 것이 잘하는 일인지는 모르겠다.
천이현상을 무시하고 깨끗하게 하는 것이 진정 늪을 살리는 길인가.
아니면 자연 그대로 놓아둔다면 어떤 천이과정을 거치게 될까?
더 아름답고 동식물이 살기 좋은 정양늪이 될 것인가!
아니면 매립 되거나 오물에 방치되어, 악취가 진동하는 역겹은 애물단지가 될 것인가.
한번 쯤 정양늪을 사랑하는 마음 일구어 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