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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조선시대 이후 호칭된 지명이다.
조선 태종 13년(1413)에 행정구역 개편 시 주가 군으로 강등되면서 합천이라 하였으며 합천은 좁은 내라는 뜻으로 이 지역이 산이 많고 들판은 없어 온통 산으로 둘러 쌓인 좁은 계곡이 많다는 뜻과 부합되는 것으로 풀이 된다.
그러나 1914년 3월에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분지를 이루고 있는 초계와 삼가가 합천군으로 편입되면서 좁은 계곡 또는 좁은 내라는 뜻은 맞지 않다하여 (세개의 고을이 합하여 이루어진 곳)합천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한문식(漢文式) 표기방식은 그대로 존속하나 말할 때와 읽을 때는 “합천”이라고 한다.

읍면별 지명유래

가야면

  • 북두산 : 산봉우리가 북쪽을 향하고 있어 북두산이라 하였다.
  • 단지봉 : 산 꼭대기에 단지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단지봉이라 하였다.
  • 남산봉 : 임진난때 피난민들이 이곳에 성을 쌓았다 하여 성덤이라 하였는데 현재는 남산봉이라 표기되어 있다.
  • 두무산 : 옛날부터 산봉우리에 항상 안개가 끼여 있다 하여 유래 되었다.
  • 자경산 : 옛날 이산 부근에 사는 주민들이 스스로 이산에서 경비를 한적이 있어 지경산이라 하였다.
  • 가야산 : 성주, 고령, 김천, 거창, 합천군을 경계로 하는 산이다.
  • 신부락뒷산 : 신마을 뒤에 있는 산이라 신부락뒷산이라 하였다.
  • 남산제일봉 : 영남지방의 제일 높은 봉우리라 하여 불려짐.
  • 비봉산 : 산모양이 봉황이 나는 모양이다 하여 비봉산이라 하였다.
  • 매화산 : 신라 때 산주위에 매화꽃이 많아 봄이면 꽃구경하러 찾아오는 이가 많았다 하여 매화산이라 하였다.

가회면

  • 황매산 : 산 색깔이 황색을 띠고 있으며 산지형이 매화락지형이라 하여 황매산이라 하였다.
  • 허굴산 : 산봉우리에 큰 굴이 있어 여름에는 찬바람이 겨울에는 더운 바람이 부는 유명한 굴이 있어 허굴산이라 하였다.
  • 옥녀봉 : 옛 전설에 의하면 천상옥녀가 이 산에 내려 왔었다 하여 옥녀봉이라 하였다.
  • 무봉산 : 전설에 의하면 어느해인가 봉황새가 이곳에 와서 춤을 추었다 하여 무봉산이라 하였다.

대병면

  • 금성산 : 이산은 중턱부터 암석으로 되어 있어 천연적으로 성처럼 보이며 옛날에 군사들이 진을 많이 친곳이며 금성산으로 불렸으며 조선시대 때는 봉화를 피웠다 한다
  • 허굴산 : 이산 북쪽에 배털굴이라는 큰굴이 천여년전부터 내려오는데 이 굴이 허하다는 뜻에서 산 명칭을 허굴산이라 하였다.

대양면

  • 수리봉 : 이산봉우리에 시루처럼 생긴 바위가 있고 산모양도 시루를 엎어 놓은것 같다 하여 시리(시루)봉이라 하였는데 발음이 와전되어 수리봉이라 칭하였다.
  • 승비산 : 이산봉우리에 성지(성지)였던 곳이 있으며 옛날 전쟁때 승리하여 이곳에 기를 꼿았던 곳이라 승비산이라 칭하였다.
  • 대암산전경 대암산 : 대양면 장지리에 있는 해발 591m의 산으로 대암산(大岩山)으로 부르기 전에는 태암산(泰巖山)이라 했으며 초계군지에는 대암산(臺巖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옛날 봉곡(장지의 옛 지명)마을에서 소금 장사를 하던 지극한 효자가 있었는데 초계들로 이사를 하였다. 제삿날이 되면 그 조상의 영현이 나타나 아들의 집인 초계를 가기위해 산을 넘는데 산이 높고 험준하여 고개 마루에 닿았을 시간에는 이미 새벽동이 트고 날이 밝아지니 제삿밥을 얻어먹지 못하였다. 이에 아들에게 현몽하여 하소연을 하니 효자인 그 아들은 매년 제삿날에는 고개 마루에서 지극한 정성으로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그 후 소금장수는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하며 지금도 대암산 마루에는 옛날 제사를 지냈던 고인돌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 고소산성전경고소산성(대야산성) : 대양면 정양리 산22-1번지. 정상부에 건물지로 추정되는 평지가 있으며, 황강 건너 합천읍이 한눈에 들어오는 등 조망이 좋아 성의 입지로서는 매우 탁월한 편이다. 642년 백제 장군 윤충이 대야성을 공격하기 위해 일만여 병력을 거느리고 이곳에 성을 쌓아 대전했던 곳으로 전하고 있다. 현재 성곽은 거의 허물어진 상태인데, 남아있는 성곽은 둘레 100m, 높이 1.5m 정도이고 정상에 천지(둘레 약 12m)가 있다.
  • 승비산성 : 대양면 양산리 산91번지. 신거마을 뒷산 승비산 정상부에 위치하는 조선시대의 성지. 해발250m의 정상부는 비교적 넓은 평지를 이루며 현재 남아있는 성벽은 정상부의 완반한 지형에 따라 편평한 돌로 축조되어 있는데 일부만 잔존하고 높이는 1.5m 정도이다. 둘레는 약 80m이고, 동과서쪽에 폭이 약 1m 정도되는 성문지만이 확인될 뿐 내부 시설은 확인되지 않는다. 산성 동남쪽 240m 지점에 상당히 넓은 평지가 있는데, 마을주민의 전언에 의하면 옛날에 이곳에서 군사들이 훈련을 했다고 한다.
  • 대양면 정양리 하회마을 뒷산 성재만당에 있는 큰 참나무 아래에 바위에는 움푹 파인 자국이 있다. 이 자국은 장수가 말을 타기 위해 발을 디디며 생겼다고 한다. 또한 건너편 강을 건넌 장수가 말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며 주먹으로 땅을 짚은 곳에 큰 바위가 있는데 아직도 땅을 짚을 때 생긴 자국이 남아있다.

덕곡면

  • 다남산 : 옛전설에 의하면 이산에 와서 정성을 들이면 아들을 얻었다 하여 다남산이라 칭하였다.
    • 다남산 : 다남산(378m)은 소학산과 마주보고 있으며, 기암절벽이 수려한 산이다. 옛날 이곳에 무효대사라는 노승이 살았다는 절터가 아직도 남아 있다. 다남산 정상에 있는 이 절에는 아주 힘이 센 장사스님이 있었는데 이 장사 스님이 가끔 힘을 과시하여 마을 사람들을 위협 내지는 협박 등 불안감을 주는 행동을 하였다. 그래서 이를 근절, 예방하기 위한 묘책으로 스님이 하산 후 돌아갈 때 쉬어가는 능선 하단 부근에 큰 구덩이를 파서 퇴비를 많이 넣고 피마자 한 포기를 심어 정성껏 가꾸어 가을 수확기 시기에 김교원이라는 아주 힘이 센 경주김씨 후손에게 스님과 이 피마자 나물을 한 손으로 뽑는 힘겨루기 내기를 하도록 하였다. 먼저 스님이 뽑도록 하였는데 스님이 전력을 다해도 뽑지 못하자 김장사가 한손으로 뽑아 올리고는 평소 스님의 횡포에 대한 보복으로 뽑은 피마자 나무로 심한 구타를 하여 혼쭐을 내고 난 후로부터는 스님의 횡포가 근절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이 절은 수년이 지난 후 절에 빈대가 많이 번식하여 사람이 도저히 기거할 수 없고, 절 부근 우물도 말라 식수난도 당하게 되자 스님은 다른 곳으로 떠나고 폐절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도 절터의 흔적이 남아있다.
  • 소학산 : 학이둥지를 짓고 앉아 있는 모양의 산이라 소학산이라 칭하였다.
    • 소학산 : 소학산은 덕곡면 북서쪽에 우뚝솟아 있는 산으로 높이가 489m이며 정상에는 북동쪽으로 뻗은 능선에 많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소학산 정상에는 산성의 흔적이 20m 정도 남아있으며, 조선시대 봉화대의 흔적과 임진왜란 때의 격전지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상봉에 새겨져 있는 국금지 표시는 정상에 묘지를 쓰면 극심한 한발이 생긴다하여 나라에서 이를 금지했다는 설이 있다. 상봉 주위에 산이 약 10m정도 끊긴 흔적이 있는 것은 옛날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이곳은 산세가 너무 좋아 인재와 장군이 많이 태어난다고 투기를 하여 붓으로 지도에 나타나 있는 산맥을 잘라낸 탓이라 널리 알려져 있다. 소학산 중턱에 있는 소학사의 노승 무효대사가 다남산과 절 사이에 구름다리를 놓아 그곳을 왕래하며 도를 닦았다 하는 절터가 있다. 현재는 정상까지 등산로가 닦여져 있다.

묘산면

  • 화성산 : 옛날 산봉우리에 성을 쌓고 급한일이 생기면 이곳에서 봉화를 피웠다 하여 화성산이라 하였다.
  • 토곡산 : 산 발치에 토굴이 있어 토골산이라 칭하였다.
  • 달윤산 : 윤씨가 제일 먼저 와서 살았던 산이라 달윤산이라 칭하였다.

봉산면

  • 망일산 : 이산에 올라 해와 달을 바라보았다 하여 망일산이라 칭하였다.
  • 봉두산 : 산모양이 봉황의 머리 같다 하여 봉두산이라 칭하였다.
  • 논덕산 : 조선시대 때 조남명 선생이 논덕산이라 칭하였다.
  • 강덕산 : 조선시대 때 조남명 선생이 산세를 보고 지은 명칭이며 이 산에서 피난 하여 화를 면했다 하여 강덕산이라 칭하였다.
  • 월현산 : 산모양이 닭처럼 생겼으며 달을 바라보고 있다 하여 월현산이라 칭하였다.

삼가면

  • 소곡산 : 산봉우리 아래 바위가 있는데 새둥지처럼 보인다 하여 소곡산이라 칭하였다.
  • 백학산체육시설모습 백학산 : 학이 봉두마을로 향하여 곧 날아가는 듯한 모습의 지형을 띄어 백학산이라 칭하였다
    • 백학산은 삼가면 일부리 산 47 번지 해발 269m 이고, 옛 이름 으로는 백악산, 비봉산(대동여지도) 라고도 불렸다고한다. 산세는 앞쪽은 면 소재지을 향하고 중앙부는 움푹 들어간 삼각형의 계곡 경사의 산지이다. 산밑은 양천강이 흐르고 우쪽 하편에는 "망듬" 이 솟아 있고, 산정 뒷편은 고등능선으로 자굴산으로 이어졌다. 정상부에는 삼국시대의 유물로 자연석 돌담형식의 백학산성터가 약 500m정도 남아있으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고 한다 신라 김품석 장군이 합천 대야성주로 있을때 어느날 서상리 에서 묘산면으로 가는 안짓골 골짜기에서 사냥에 몰두하다가 밤이 깊어 부하들도 길을 잃고 방황하다 겨우 인가를 찾아 숙박 중 소피가 마려워 밖에 나갔는데 부하인 "금일"의 처와 마주치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금일이 이 장면을 목격하여 상사를 원망한 나머지 서상리에서 막사를 몰래 빠져나와 돗골. 삼거리 .진등깁은골 . 널티를 거쳐 백제의 최전방인 삼가의 백학산성 "윤충"장군의 진중에 와서 대야성에 불길이 오르면 쳐들어 오라고 내통을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 위치 :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일부리

쌍백면

  • 성현산 : 옛날 산위에 성이 존재하였다하여 유래.
  • 금곡산 : 가을 산에 단풍이 금을 칠한것과 같이 누런 빛이 많이 나는 것에서 유래.

쌍책면

  • 부수봉 : 330여년전에 수목이 울창한 숲이 있었는데 이 지방에서 제일 큰 부자가 이 숲을 소유하고 관리하였다 하여 이 산을 부수봉이라 하였다.
  • 단봉산 : 200.7m의 단봉산의 당산은 예부터 마을주민의 평안과 무사를 비는 당산제를 지내는 당산이 있으며,초계향교가 있어 더욱 영지로 인정받고 있으며 기후제를 지내기도 한다.

야로면

  • 자경산 : 산모양이 종처럼 생겼으며 종이 스스로 우는 모양이라는 뜻에서 자경산이라 하였다.
  • 미숭산 : 신라말에 이 마숭이란 장군이 이 산봉우리에서 정권에 반대항며 싸움을 하다 이곳에서 전사하였다 하여 미숭산이라 하였다.

용주면

  • 논덕산 : 수려한 산세로 인하여 옛날 선비들이 자주 토론의 장소로 이용한데서 유래
  • 갈마산 : 산 모양이 말처럼 생겼으며 황강에서 물을 먹는 형상이라 하여 갈마산이라 칭하였다.
  • 의룡산 : 산모양이 용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의룡산이라 칭하였다.

율곡면

  • 용덕산 : 조선시대 때 초계군수가 날씨가 가물면 이산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하여 이곳은 용의 덕을 보는 것이라 하여 용덕산이라 하였다.
  • 노태산 : 산세가 웅장하지만, 오래되어 경사가 완만하다는 데서 유래
  • 대암산 : 이산 기슭에 큰바위가 있어 대암산이라 하였다.
  • 만대산 : 200여 년전 나라의 풍수가가 이산에 국묘를 잡아 노양쪽에는 자손의 록이 태산 같다는데서 유래하여 녹대산이라 하였다.

적중면

  • 동웅봉 : 산모양이 동옹과 같은 형이라 동옹봉이라 하였다. 동옹이란 뜻은 銅甕의 한자표기가 전해져 내려오면서 同甕으로 변형되어 진 것으로 추측됨
  • 옥두봉 : 산봉우리 모양이 옥 그릇의 뚜껑처럼 생겼다 하여 옥두봉이라 하였다.
  • 천황산 : 하늘에 옥황상제가 산다고 하여 유래 기후제 및 제단의 근원지라고 함.

청덕면

  • 다남산 : 산 줄기가 남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 많다는 데서 유래
  • 강진산 : 강진안씨 시조공 2세인 초계 임향조를 비롯하여 19위 묘가 집중되어 있는 독산으로서 강진안씨의 산이라는 의미.

초계면

  • 태백산 : 크고 맑다는 뜻에서 태백산이라 하였다.

합천읍

  • 옥산(玉山) : 조선시대에 제작된 합천군 지도상에 주요 山川의 하나로 올려져있고 동국여지승람에도 나오는데 그 사적을 살펴보면 신라(新羅)가 고려태조(高麗太祖) 왕건(王建)에게 망할 당시 대야성주(大耶城主) 김억겸의 딸이 경순왕의 천거로 태조의 아내가 되니 신성왕후(神成王后)요, 신성왕후의 친정집이 이 玉山에 있었다. 신성왕후는 태조의 다섯 번째 왕비로서 아들 욱(郁)을 낳으니 여덟 번째 왕자이다. 욱(郁)은 효숙왕후와 사이에 아들 순(詢)을 낳았는데 이분이 고려 제8대왕 현종(顯宗)이시다.
    효숙왕후는 순(詢)을 낳고 곧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 욱(郁)은 사천(泗川)으로 귀양을 가게되자 보모를 두어 할머니 신성왕후의 친정인 이곳 玉山에서 대량원군(大良院君)으로서 12세까지 자라게 된다. 왕에 등극한 현종은 할머니 신성왕후의 고향이자 자신이 성장한 강양군(江陽郡)을 합주(陜州)로 승격시켜 진주,거창등 12개 고을이 예속되니 합주(陜州)는 도(道)의 격이 되었다. 그로부터 천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천재지변등으로 강줄기가 바뀌고 제법 큼직한 형태였던 玉山도 홍수에 씻겨져 자취만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 육정 개밥골 : 장계리 육정마을앞 골짜기를 “개밥골”이라 부르고 있는데 그 연유는 이러하다. 육정마을 위치가 인근 큰 마을들과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을뿐 아니라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외진곳으로 옛날에는 주변산들이 나무가 울창하여 한낮에도 혼자서는 외지출입을 하기가 무서웠다고 한다. 그 무렵 마을에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 사람과 가축을 해치므로 이를 막기 위해 매월 그믐이면 마을에서 기르는 개를 한 마리씩 이곳에 풀어놓아 호랑이 밥이 되게 하여 마을의 다른 피해를 막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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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합천군청 (☎ 055-930-3114)
최종수정일 :
2019.10.30 15: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