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기록을 다시하시길
- 제안자
- 김영진
- 이메일
- mulggaro@naver.com
- 토론기간
- 2024-10-21 ~ 202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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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전고분군, 합천박물관에 조선총독부 력사관으로 왜곡된 숨은 글 찾기
전) 경남도의원 김 영 진
락동강(洛東江)은 영남 전역을 유역권으로 한반도에서 압록강과 두만강 다음으로 길다. 강원도 태백 화전동의 매봉산 천의봉 너덜샘이 발원지이고 황지연못에서 용출된 후 구미ㆍ창녕을 지나 부산으로 흐른다. 길이는 510km이고, 유역 면적은 23,384㎢이다. 옛날에는 내륙 교통의 동맥(고속도로)으로 강변을 따라 하단ㆍ구포ㆍ삼랑진ㆍ수산ㆍ남지ㆍ현풍ㆍ왜관ㆍ낙동ㆍ풍산ㆍ안동 등 선착장이 발달했던 가항 거리는 343km로 한반도 고대 가야국의 건국과 발전 동맥이었다.
“한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세우는 데 역사만큼 중요한 게 없고, 한 민족의 정체성과 민족혼을 말살시키는 데에도 역사를 왜곡하는 것만큼 손쉬운 것이 없다.”라고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 원장은 말했다.
조선총독부 직속 조선사편수회 출신 이병도·신석호가 해방 후 력사매국사학계에 뿌리 박은 “임나국이 가야다. ‘왜’가 고대부터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 낙랑군이 한반도 평양에 있었고, 북한은 고대부터 중국 땅이었다. 일제 때 조선이 근대화되었다. 독도는 일본 것이다. 독도를 한·일 간에 공동 영유해야 한다. 일본군‘위안부’는 자발적인 일이었다.”라며 나타난다고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 원장은 말했고, “역사학은 문헌 사료를 토대로 비판을 기본으로 하는 학문”이라고 윤내현 교수는 말했다.
독일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게 “비판적(批判的) 사유(思惟)를 할 수 있는 능력(能力)을 길러주는 것”이며, 오로지 “죽은 물고기만 강물의 흐름을 따라 흐른다”라고 한다.
이 글은 일본 극우와 한국의 력사매국노가 보는 ‘시각과 력사관’으로 우리 ‘력사’를 바라본 게 아니라, 한국 사람이 '독립항전가 력사관’으로 ‘력사’를 바라본 관점대로 기술한다. 력사매국노는 글을 '가야'라고 쓰고 말하며, 속으로는 '임나'라고 되새긴다.
옥전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 확정되었다.
하지만 합천박물관 전시물 기록에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인 ‘한반도임나설(가야국=임나)’을 간교하게 복원시켜 왜곡ㆍ조작한 전시기록을 읽을 때마다, 스스로 우리 선조를 비하하고 보잘것없는 조상을 둔 민족으로 인식하게 하는 게, 지금 유네스토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한 박물관마다 숨어있는 『일본서기』의 ‘임나일본부설·임나史’ 기록이다.
박물관마다 발굴 전시한 유물ㆍ유적은 가야국(가락국)이 눈부신 문화유산을 창조한 문화강국임을 확신할 수 있는 데도, 그 기록은 선조를 하나 같이 비루한 조상인 것처럼 각인시켜 놓고 있다. 전쟁 중이라 하더라도 국가영토는 서로 빼앗기도 하고 빼앗기기도 하지만, 자기 나라 역사를 빼앗기는 것은 영원히 회복할 수가 없다!!
우리 민족이 사라진다. ‘조선총독부 황국사관’으로 왜곡ㆍ조작된 그 기록을 바로 잡아 가야국이 고도의 기술과 문화를 창달하여 주변국으로 전파 시킨 웅대한 역사와 유물유적을 남긴 자랑스러운 조상이라는 사실을 기록해야 한다.
경남지역의 김해 대성동박물관, 창녕 박물관, 고성 박물관, 합천 박물관의 전시물 기록은 『일본서기』 ‘임나일본부설(가야국=임나)’로 완전히 도배하다시피 서술되었으나, 경북을 비롯한 전국의 다른 박물관 전시물 기록은 「한반도임나설(가야국=임나)」 기술 내용이 거의 없다. 왜 그럴까요?
합천 박물관의 전시 기록물은 대한민국 박물관이 아니라, 일본의 한국지부 박물관인가!! 하고 우리 눈을 의심해야 할 지경이다.
『일본서기』 ‘한반도임나설(가야국=임나)’로 완전히 칠갑하고, 도배가 되어있다.
합천 박물관의 ‘다라국’이라는 명칭은 서기 369년에(실제로는 249년인데 맘대로 120년을 더해 369년 사건이라는 억지 날조) 왜(倭)가 바다를 건너와 신라를 쳐서 깨부쉈다 하고서는(신라는 망하지 않음) 가야국 땅에 있던 7국을 평정했다며 『일본서기』 ‘한반도임나설(가야국=임나)’의 임나7국·임나10국에 들어있는 이름이다.
글의 문맥이 앞·뒤가 맞지도 않고, 『일본서기』에만 나오는 이름을 대일항전기(일제감점기) 일제 식민학자들은 대마도와 규슈, 왜(倭) 열도 안에서 찾아 비정하지 않고, 한반도의 가야국에 땅에다 통째로 날조한 임나7국(비자발-창녕, 남가라-김해, 녹국-경산, 탁순-대구·창원, 안라-함안, 다라-합천, 가라-고령)중에 ‘다라’이다. 고대 왜(倭)가 신라를 쳐부쉈다 하고서는 가야국 땅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하여 통치한 곳 이름이 ‘다라’로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가야국=임나’라고 새겨 완전히 도배해 놓은 격이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임나7국과 임나10국은 고대 가야국과 백제국, 신라국, 고구려국 왕족, 기술자 집단 사람들이 대마도와 규슈, 왜(倭) 열도 안으로 한반도 본국에서 바다를 건너가 집단 이주해서 세웠던 작은마을(소읍), 분국이다. 부산대 이병선 교수를 비롯한 많은 민족사학자들이 최근까지도 연구논문을 발표해 놓았다.
역사매국노들은 아직까지 그것에 대한 반론은 하나도 제시하지 않고, 일제 관학자들이 발표한 낭설을 해방 후에 조선총독부 직속 조선사편수회 출신 민족반역자 이병도와 신석호가 그 억단(臆斷)을 통째로 역사 매국 사학에 뿌리박았다. 그것을 그대로 베낀 역사 매국노들이 지난 35여 년 동안 허접한 논문과 단행본을 냈고 합천 박물관은 그대로 베껴 기록해 놓았다.
『양직공도』 주요 내용은 백제는 옛 래이(來夷)로 마한(馬韓)에 속했다. 진말에 (고)구려가 요동을 차지하자 낙랑(백제) 역시 요서, 진평현을 차지하였다.
百濟舊來夷馬韓之屬 晉末 駒麗畧有遼東 樂浪亦有遼西晉平縣
그 나라 도성을 고마라 하고, 읍을 담로라고 하는데, 이는 중국 군현과 같다. 22담로가 있어 (왕)자제 종족이 나누어 다스렸다.
담로 주변 방소국(傍小國) ‘반파, 탁, 다라, 전라, 사라, 지미, 마련, 상사문, 하침라’ 등이 붙어있다.
所治城曰固麻, 謂邑檐魯 於中國郡縣 有二十二檐魯, 分子弟宗族爲之 旁小國有 叛波 卓 多羅 前羅 斯羅 止迷 麻連 上巳文 下枕羅 等附之 『양직공도』 百濟國使
『양직공도』를 한 번이라도 읽어 보고 주장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라국이 합천이라는 근거가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기문국이 남원이라는 근거도 전혀 없다.
다라가 합천 '다라국'이고, 상사문이 남원 '기문국'이라고 억지로 우길 것이 아니라, 그 근거를 제시하란 말이다!
합천이 어찌하야 '왜(倭)'가 서기 369년에 멸망시켜 식민지로 임나일본부를 설치한 합천 다라국이란 말인가!
가히 합천 다라국은 그야말로 왜곡·날조 끝판왕이다.
눈 뜨고 좀 봐! 부끄럽기가 그지없다!
앞서 말하였듯이 ‘왜(倭)’는 6세기 중엽까지도 자체 철 제련 기술이 없었다. 또 아직 국가체제 형성도 안 된 그 ‘왜(倭)’가 《가야국》 강역(疆域)에는 있지도 않았던 ‘신라 7국’을 평정했다 하고, 가야국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하고서 서기 562년 《대가야국(고령)》이 멸망할 때까지 가야국을 식민지(369~562년)로 지배했다고 억단하는 것이 임나일본부설이며, 그것은 허구(虛構)일 뿐이다.
그렇게 ‘한반도임나설(가야국=임나)’ 위치 비정을 한반도 안에다 억단하는 사람들 가운데 그러면 "서기 369년에 가야국이 멸망했냐? "는 나의 물음에 아직 한 명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들은 대답할 수 없다는 것도 충분히 안다. 왜냐? 가야국은 그 당시에 멸망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야국 왕력은 1대 김수로왕(42~199), 2대 거등왕(199~253), 3대 마품왕(253~291), 4대 거질미왕(291~346), 5대 이시품왕(346~407), 6대 좌지왕(346~407), 7대 취희왕(407~451), 8대 질지왕(451~491), 9대 겸지왕(491~521), 10대 구형왕(521~532)이다.
일본은 '왜(倭)' 라고 표기해야 한다.
일본(日本)이란 낱말이 서기 670년경에 첫 기록으로 나온다.
그 이전 문헌 사료에 기록된 왜(倭)는 ‘왜구ㆍ왜적ㆍ왜인’으로 노략질을 일삼는 추격ㆍ격퇴ㆍ멸의 대상이다.
※‘임나일본부설’이란 《일본서기》 신공 49년 조 『일본서기』 신공 卌九年 春三月,俱集于卓淳, 擊新羅而破之. 因以, 平定比自㶱·南加羅·㖨國·安羅·多羅·卓淳·加羅, 七國. 仍移兵, 西廻至古奚津, 屠南蠻忱彌多禮, 以賜百濟. 於是, 其王肖古及王子貴須, 亦領軍來會. 時比利·辟中·布彌支·半古, 四邑, 自然降服. 是以, 百濟王父子及荒田別·木羅斤資等, 共會意流村[今云州流須祇.]. 相見欣感. 厚禮送遣之. 唯千熊長彥與百濟王, 至于百濟國, 登辟支山盟之. 復登古沙山, 共居磐石上. 時百濟王盟之曰, 若敷草爲坐, 恐見火燒. 且取木爲坐, 恐爲水流. 故居磐石而盟者, 示長遠之不朽者也. 是以, 自今以後, 千秋萬歲, 無絶無窮. 常稱西蕃, 春秋朝貢. 則將千熊長彥, 至都下厚加禮遇. 亦副久氐等而送之.
에,
[실제 기년은 249년인데, 맘대로 120년을 더해 369년 사건이라 주장함- 력사서(歷史書)에 년도 조작만으로도 위서(僞書)고 완전한 허구(虛構)다.]
왜(대화 倭)가 369년에 탁순(대구)에 집결해서 신라를 쳤고(하지만 신라는 망하지 않음), 신라7국(비자발比自㶱-창녕ㆍ남가라南加羅-김해ㆍ록국㖨國-경산ㆍ탁순卓淳-대구,창원ㆍ가라加羅-고령ㆍ다라加羅-합천ㆍ안라安羅-함안)을 『가야국 강역(疆域)》 안에 있던 것으로 조작해서 평정하고서, 그 군대 기수를 서쪽으로 돌려 고해진(古奚津)에 이르러 남만(南蠻,남쪽오랑캐)인 침미다례(강진·해남)를 도륙한 후 백제에 할양하였다 한다.
이에 비리(比利)-정읍ㆍ벽중(辟中)-김제ㆍ포미지(布彌支)-고부ㆍ반고(半古)-부안 등 4읍은 스스로 항복하고, 백제왕 부자(父子) 초고왕과 귀 수는 ‘왜’에 천년만년 영원토록 늘 서쪽 번 국이라 칭하며, 봄ㆍ가을로 조공을 바치겠다고 맹세했다는 내용이다.
『일본서기』는 백제국이 완전히 멸망한 후(663년) 왜(倭)로 건너간 백제국 사람들이 쓴 책이다. 그리고 왜(倭)는 종주국이고, 백제국을 속국으로 날조한 내용이다.
6세기 중엽까지 철을 제련하는 기술이 없었고, 국가체제가 형성이 안 된 ‘왜(대화 倭)’인데, 그 ‘왜(倭)’가 삼한정벌(실제는 209년인데 329년이라며) 후 재차 침입한 서기 369년에 《가야국》을 평정하고서, 한반도 고대 6가야국 강역(疆域) 안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하고 562년 대가야국(고령) 멸망 때까지 한반도 고대 남부지역을 식민지(369~562년)로 통치 지배했다고 한다.
2023년 9월 17일 합천 ‘다라국’, 남원 ‘기문국’이라는 국名을 삭제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확정된 7개 모든 박물관마다 기록 내용을 아직도 그대로 ‘한반도임나설(가야국=임나)’로 도배하듯이 써놓았으니 참 기가 찰 노릇이다.(2024. 0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