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번역시스템을 이용하여 자동 번역중입니다. 번역이 정확하지 않을 경우가 있습니다.
It is under automatic translation using Google translation system. The result may not be accurate.
이마을은 동편,서편,남계,개울마,새터의 5개마을이 합하여 계산2구라 한다. 처음 생긴 동편 마을은 세조등극이후 정난을 피하여 이곳에 온 성군생원 사천이씨 욱이 시거하여 수대를 살고 있는 1590년대 경 임진란을 피하여 안동 권씨 만선이 이곳에 정착하여 사천이씨의 사위가 되면서 마을이 이루어 졌다. 서편동은 1680년대경에 수원백시 사옥이 시거하고 개울마는 1680년대경에 파주염씨 신흡이 거창군 남상면 월평리에서 시거하였으며 새터마을은 1690년대경에 합천이씨 인봉이 시거하엿다. 남계마을은 1710년대에 밀양박씨 치덕이 거창 남하 지산리에서 이곳에 정착하였으나 해발460의 고지대이고 농사에 불편하므로 약 250년 동안 후손들이 살다가 1955년을 기점으로 하여 농사에 편리한 현재의 부락으로 집단이주하였다.
계산2구(界山二區) : 이마을은 동편,서편,남계,개울마,새터의 5개마을이 합하여 계산2구라 한다. 처음 생긴 동편 마을은 세조등극이후 정난을 피하여 이곳에 온 성군생원 사천이씨 욱이 시거하여 수대를 살고 있는 1590년대 경 임진란을 피하여 안동 권씨 만선이 이곳에 정착하여 사천이씨의 사위가 되면서 마을이 이루어 졌다. 서편동은 1680년대경에 수원백시 사옥이 시거하고 개울마는 1680년대경에 파주염씨 신흡이 거창군 남상면 월평리에서 시거하였으며 새터마을은 1690년대경에 합천이씨 인봉이 시거하엿다. 남계마을은 1710년대에 밀양박씨 치덕이 거창 남하 지산리에서 이곳에 정착하였으나 해발460의 고지대이고 농사에 불편하므로 약 250년 동안 후손들이 살다가 1955년을 기점으로 하여 농사에 편리한 현재의 부락으로 집단이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