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번역시스템을 이용하여 자동 번역중입니다. 번역이 정확하지 않을 경우가 있습니다.
It is under automatic translation using Google translation system. The result may not be accurate.
합천
조선시대 이후 호칭된 지명이다.
조선 태종 13년(1413)에 행정구역 개편 시 주가 군으로 강등되면서 합천이라 하였으며 합천은 좁은 내라는 뜻으로 이 지역이 산이 많고 들판은 없어 온통 산으로 둘러 쌓인 좁은 계곡이 많다는 뜻과 부합되는 것으로 풀이 된다.
그러나 1914년 3월에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분지를 이루고 있는 초계와 삼가가 합천군으로 편입되면서 좁은 계곡 또는 좁은 내라는 뜻은 맞지 않다하여 (세개의 고을이 합하여 이루어진 곳)합천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한문식(漢文式) 표기방식은 그대로 존속하나 말할 때와 읽을 때는 “합천”이라고 한다.
대암산 :
대양면 장지리에 있는 해발 591m의 산으로 대암산(大岩山)으로 부르기 전에는 태암산(泰巖山)이라 했으며 초계군지에는 대암산(臺巖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옛날 봉곡(장지의 옛 지명)마을에서 소금 장사를 하던 지극한 효자가 있었는데 초계들로 이사를 하였다. 제삿날이 되면 그 조상의 영현이 나타나 아들의 집인 초계를 가기위해 산을 넘는데 산이 높고 험준하여 고개 마루에 닿았을 시간에는 이미 새벽동이 트고 날이 밝아지니 제삿밥을 얻어먹지 못하였다. 이에 아들에게 현몽하여 하소연을 하니 효자인 그 아들은 매년 제삿날에는 고개 마루에서 지극한 정성으로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그 후 소금장수는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하며 지금도 대암산 마루에는 옛날 제사를 지냈던 고인돌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고소산성(대야산성) :
대양면 정양리 산22-1번지. 정상부에 건물지로 추정되는 평지가 있으며, 황강 건너 합천읍이 한눈에 들어오는 등 조망이 좋아 성의 입지로서는 매우 탁월한 편이다. 642년 백제 장군 윤충이 대야성을 공격하기 위해 일만여 병력을 거느리고 이곳에 성을 쌓아 대전했던 곳으로 전하고 있다. 현재 성곽은 거의 허물어진 상태인데, 남아있는 성곽은 둘레 100m, 높이 1.5m 정도이고 정상에 천지(둘레 약 12m)가 있다.
백학산 :
학이 봉두마을로 향하여 곧 날아가는 듯한 모습의 지형을 띄어 백학산이라 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