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리
본래 합천군 거을산면의 지역으로서 달윤산 남쪽이 되므로 화양동, 화동, 행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현내면의 나천동과 묵촌동 일부를 병합하여 화양리라하여 묘산면에 편입되었다.
화양리는 화양, 상나곡 하나곡등으로 3개의 자연마을단위로 되어있다.
화양마을
마을이름 유래
가야산에서 뻗어 온 달윤산 남쪽 산들을 동네좌우 앞뒤로 하여 마을이 형성되어있다. 양 540년전 파평윤씨 14세손 되는 사람이 세조조 절재 김종서의 처 종숙부로서 정난시 화를 피하여 남하 하여 이곳에 은거하게 되었다고 하나 그이전은 명확히 알 수 없다.
문화유적
- 묵와고가(?窩古家): 국가 중요민속자료 206호로 조선 선조때 선전관을 지낸 윤사정(尹思晸)공이 인조 때 지은 집으로 항일 독립운동가 윤중수(尹中洙)의 고택이다.
- 야천신도비(冶川神道碑) : 경상남도지정 유형문화재 301호로 반남박씨 문강공의 신도비인데 조선명필 한석봉 친필로 새겨 선조23년9월(1590년)에 건립하였다.
- 영사재(永思齋) : 경상남도지정 문화재자료 323호로 파평윤씨 사재공(司宰公) 이하를 위한 재실로 후학을 교육하던곳.
- 육우당(六友堂) : 파평윤씨 제실로 후학을 지도 교육하던 곳.
- 화양재(華陽齋) : 반남박씨의 재실로 야천 박소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
나곡마을
마을이름 유래
- 나곡은 본래 상나에서 시작되어 하나로 흘러가는 계곡을 경계로 해서 북쪽은 합천군 현내면이고, 남쪽은 합천군 거을산면으로 되어 있던 것이 행정구역 개편으로 묘산면 화양리에 흡수된 자연마을이다. 때문에 이전 상나마을은 마을 가운데 흐르는 실개천을 경계로 해서 마을이 양분되어 북쪽은 현내나천 남쪽은 거을산나천으로 되어 있었다.
- 나곡리(상나) : 두무산에서 뻗어내려온 시루봉 동쪽에 자라잡은 370m 고지에 위치한 오지마을로 국도에서 약 3.5km거리이며, 천년기념물 289호 묘산면의소나무가 마을 앞에 있다.
- 나곡리(하나) : 상나마을과 화양마을의 중간에 위치한 마을로 갯골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문화유적
- 묘산면의소나무 : 구룡송(龜龍宋)으로 불리며, 천년기념물 289호로 1982년 지정당시 수령은 약 720년으로 추정되었다.
- 묘산면의 소나무(천년기념물289호) 광해군초 영창대군의 외조부 김제남의 6촌되는 김규(金揆)공 이 입촌하여 구룡송 밑에 잠이 들어 비단옷을 입은 여인이 물 을 길러 가는 꿈을 꾸고 그곳 을 파보니 맑은 물이 솟아 그 샘을 나천(羅泉)이라 하고 마을명도 나천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