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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기리는 본래 합천군 심묘면의 지역으로서 관터 또는 관기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지역 개편시 거을산면의 죽전동, 웅기동, 중촌동 일부를 병합하여 관기리라 해서 묘산면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관기마을은 이조 중종때 양주목사를 지낸 남평문씨 문계창 공이 입촌하였고, 문종때 밀양박씨 박영공이 이주하였다 하나 마을 형성 내럭은 알 수 없으며, 집을 짓고 살만한 곳이라 하여 집관(館) 터기(基)자를 써 관기라고 하였다고 한다.
진주유씨 현조이신 벽은 유번 공은 고려 공민왕때 재상으로 명나라 사은사로 명나라에 3번이나 다녀온 공신인데 고려가 망하자 조선태조 5년 1396년 입두문동하고 그장자인 헌납 백통 공께서 서기 1400년경 은거차 그 장인인 청주한씨 본계철중 공께서 은거하고 있는 토동으로 온 후 그 자손이 근처에 마을을 형성하였는데 약 480년전 진주 유씨가 터를 잡아 마을을 형성하고, 약 80년 뒤 평산 신씨 송계선생 손자 집의 신충임 공이 입촌하고, 그 후 장씨 등 몇 성씨가 입촌 마을이 크게 형성되었다.
동명은 중용지덕을 닦는 곳이란 뜻으로 중촌이라 하며, 토곡산 자락에 화성산을 바라보고 자리잡고 있으며 웃마을 아랫마을로 되어 있다.
토곡산 줄기의 한자락에 남향의 양지바른 위치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마을로 면소재지로부터 2km거리며, 마령재에서 보면 산이 마을을 품고 있는 듯하여 고운 마을이라는 뜻에서 곰터라고 하고 곰터를 한자어로 표기하여 웅기라 한다.
마을이 형성되기는 1789년경 진주유씨 21세손 치백공께서 터를잡아 마을을 이루었으며, 안곰터는 1830년경 고령김씨 20세손 용해공께서 이주하고, 1885년경 함안 조 27세손 덕규공께서 이주하여 그 후손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