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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리

서산마을

특징 및 자랑

  • 마을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 말엽부터 몇가구가 거주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마을 형태를 이룬 것은 약 100여년 전으로 추정된다.
  • 당초 대부분의 주민들은 합천천 강건너인 북산밑(지금의 영창 이원동 마을위)에 살았으나 그 지역이 하상보다 낮아 매년 수해를 입게 되었고 특히 이주 당년(년도미상)에는 대홍수로 마을전체가 가옥이 떠내려 가는 등 큰 수해를 입어 지금의 위치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 마을 이름을 서산으로 부르게 된 것은 현재 마을 위치가 당초 마을이 있던 곳에서 볼때는 서족에 있는 산 아래라 하여 서산으로 불렀다고 하며 마을 창건 당시부터 지금까지 합천이씨 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다
서산마을

마을이름 유래

서산마을은 읍소재지 서쪽편에 접한 마을로 행정리가 단일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 마을이 창건된 것은 약 100여년전으로 추정되며, 당초 대부분의 주민들이 합천천(川) 건너 영창리 북산 밑에 살았는데 어느 해(연도미상) 대홍수로 마을 전체가 큰 수해를 입게 되어 모두 이곳으로 이주 하였다고 하며, 당초 마을이 있던 곳에서 볼 때 서쪽 산 밑이라 하여 서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안계마을

특징 및 자랑

  • 일명 “안지골”로도 불리우며 내안계와 외안계 2개의 자연마을이 있으며, 법정리동으로는 서산리에 속해있다.
  • 내안계는 이조 13대왕인 세조(1455~1468)때 안계사라는 절이 건립되었는데 얼마 후 절 주변에 취락이 형성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 이 절은 약 100여년간을 유지하다가 빈대가 너무 많아 절이 페쇄 되었다고 하며 지금도 부근에 빈대껍질덩이가 발견되기도 한다
안계마을

마을이름 유래

  • 안계마을은 원래 서산리에 속한 마을로 1966년 4월 별도 행정리로 분리 되었으며, 보통 “안지골”로 부르고 있다. 안계마을은 내안계, 외안계의 2개의 자연마을로 형성되어 있다.
    • 내안계(內安溪) : “안안지골”로 불리우며, 조선 세조 때 현재 마을 뒤 골짜기에 “안계사”라는 절이 있어 마을 이름을 안계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외안계(外安溪) : “바깥안지골”이라고도 하며, 합천에서 내안계로 들어가는 길목으로 내안계보다 약 1백년후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계림마을

특징 및 자랑

계림마을
  • 법정리는 서산리에 속해 있으며 관내에서 가장 넓은 지역으로 새마, 굿마, 보림, 남전동, 오현동, 각골등 6개의 자연마을이 있다. 이조말엽에는 상삼리면의 중심지였으며, 남전동 뒷골(현서산리 314번지 일대)에 지금의 시장격인 제자가 있던 곳으로 지금도 제자골로 불리고 있다.
  • 새마는 관내에서 가장 늦게 들어선 마을로 1900년 가을에 밀양박씨 63세손인 준제(俊濟)공이일가 몇몇과 함께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굿마는 약 120년전 고성하일에서 거주하던 합천이씨 29세손인 관구(寬奎)공이 처음 이주하여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이조말부터 한동안은 “노암동”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지금의 마을명인굿마는 마을앞 논이 모두 인접한 하천보다 낮아 굼논이 많은 곳이라 하여 굼마로 부르다가 굿마로 쓰고 있는 것이다.
  • 오현동은 원래 보림촌으로 불린 곳이다. 마을이 창건된 것은 약 450여년전으로 추정되어 계림 관내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로 보여진다. 일제시대 마을 뒤 골짜기에 오동나무가 많아 “먹우재”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으나 이는 뒷골짜기의 지명으로 마을명은 아니다. 원 지명인 보림동을 오현동으로 부르게 된 것은 일제 강점시대 지적 측량시 강아래 마을을 보림으로, 본동을오현동으로 잘못 기재한 것이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 각골은 약 150년전 보림에 거주하던 합천이씨 32세손인 성옥(聖玉)공이 전.답을 따라 첫 이주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보림과 남전동은 마을 창건 유래는 알수 없으나 오현동과 같이 오래된 마을로 보인다.

마을이름 유래

  • 계림(溪林) : 계림마을은 새마, 굿마, 보림, 상보림, 남전동 등 5개의 자연마을로 형성되어 잇고, 관내 행정리 중 자연 마을 수가 가장 많다. 조선말엽 상삼리면에 속한 지역으로 남전동 옆 골짜기에 지금의 시장격인 저자가 있었다고 하며, 지금도 저자골로 불리고 있다.
    • 새 마 : 신촌 또는 계림이라고도 하며 관내에서 가장 마을의 역사가 짧다. 서기 1900년 가을 사천에 살던 밀양박씨 63세손인 박준제(朴俊濟)공 일가 몇 명이 처음 정착하면서 마을이 만들어졌다고 함.
    • 굿 마 : 이 마을은 조선말엽부터 해방 이후까지 “노암동”으로 불렀으며, 약 120여년전 고성군 하일면에 거주하던 합천이씨 29세손인 관구(寬久)공이 처음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마을 앞 전답이 모두 인근의 하상보다 낮아 굼논(濕畓)이 많으므로 “굿마”라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마을은 합천천 건너 산 밑에 위치하고 있어 교통이 아주 불편할 뿐 아니라 조금만 비가 와도 교통이 두절되어 통행이 불가능한 실정으로 마을세가 급격히 약화되었다. 한편으로는 개울건너편에 새마을이 형성되어 새마라고 부르고 이곳을 “구”마을이라 하다가 굿마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 보 림(寶林) : 이 마을은 합천천을 건너 외곡리 신평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원래 남전동 옆 저자골에 살던 사람들이 이주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외곡천과 합천천이 합류하는 지역으로 매년 홍수피해가 잦은 곳이다.
    • 상보림 : 이 마을은 원래 보림촌으로 불린 곳으로 오현동이라고도 한다. 이 마을이 창건된 것은 약 450여년전으로 추정되며, 계림 관내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로 보인다. 처음 마을이 들어선 것은 합천이씨 20세손인 이 대(垈)공이 현 마을 북쪽 약 50m지점 고개 넘어 보림골에 정착하였으며, 제법 많은 가구가 그곳에서 300여년을 보내다가 약 150여년 전, 전국에 유행했던 전염병으로 많은 주민이 죽고 마을이 피폐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마을 서쪽 약 1km지점 산기슭에는 일제시대 아연을 생산한 폐광이 있다.
    • 남전동(南田洞) : 이 마을은 외곡천을 사이에 두고 보림과 마주하고 있다. 마을이 창건된 것은 조선말엽으로 추정되나 그 유래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보림동에서 볼 때 서남쪽에 있어 남전동으로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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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읍 민원담당 (☎ 055-930-5353)
최종수정일 :
2019.11.18 15:2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