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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곡리

외곡마을

특징 및 자랑

외곡마을
  • 마을이 창건된 것은 약 550여년전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 선조때 임란을 전후하여 성산이씨들이 많이 들어와 현재까지 대성으로 살고 있다.
  • 조선시대에는 두상면 상두리에 속해 있었으며 그후 한때는 이곳을 자곡(자지리)으로 불렀는데 口傳에 의하면 당시 이 마을에 중국 선비들의 왕래가 가끔 있었는바 이들이 와서 보고 앞 뒷산이 황폐하고 주변 바위들이 검붉은 색깔이라 하여 자곡으로 불렀다고 하며 중년까지도 외곡을“바깥자지리” 내곡을 “안자지리”로 불리웠다.
  • 지명이 외곡으로 바뀐 것은 일제시대 1914년 지방행정구역 조정후부터이다. 마을 앞에는 “운포 정”이란 성산이씨 제실이 있는데 옛부터 마을의 대소사를 이곳에서 의논하였다.

마을이름 유래

  • 외곡(外谷) : 1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 외곡 : 소사 들목에서 국도를 따라 조금만 가면 ‘마령재’가 시작되는데 왼편 아래쪽 양지에 있는 마을이 외곡이다. 마을이 창건된 것은 약 550여년 전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 임란을 전후하여 성산이씨들이 많이 들어와 현재까지 대성으로 살고 있다. 조선말엽에는 두상면 상두리에 속한 지역으로 이곳을 자곡(자지리)으로 불렀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당시 이 마을에 중국 선비들의 왕래가 있었는데 이들이 와서 보고 앞뒤산이 황폐하고 주변바위들이 검붉은 색깔이라 하여 자곡으로 불렀다고 하며 근래까지도 “바깥자지리”라 불렸다. 지명이 외곡으로 불린 것은 일제하인 1914년 지방행정구역 조정 이후 부터였다. 마을앞에 있는 자산국민학교에는 용계, 내곡, 외곡의 아동들이 다녔는데 1992년 폐교되었다. 예전에는 상곡 또는 운곡이라고도 부른 적이 있다.

신평마을

특징 및 자랑

신평마을
  • 조선시대에는 외.내곡과 같이 두상면에 속하였다.
  • 서산리 계림마을과 인접한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어 “홈내미‘란 속명도 있다.
  • 마을이 창건된 것은 약 260년전인 조선 영조때 산청군 단성에 거주하고 있던 김녕김씨 18세손 德恒公께서 진사에 등과하여 성균관에 유학중 당시 어지러운 정국을 한탄하며 먼 이곳 산골로 들어와 자리잡아 신촌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 평촌은 대체로 넓은 들로 이루어져 있어 들마라고 불리며, 1760년경 성산이씨 16세손인 光春公이 넓고 비옥한 토지를 찾아 정착한 것이 시조이다

마을이름 유래

  • 신평(新村 ) : 읍소재지에서 거창 방향인 국도 24호를 따라 약10㎞를 가면 소사 들목에 도달하게 되고 여기서 국도와 분기하여 좌측으로 내려가면 외곡마을을 지나 신평 마을에 닿게 된다. 신평마을은 신촌(新村)과 평촌(坪村) 2개의 자연마을이 있는데 신촌의 “신”자와 평촌의 “평”자를 따서 신평이라 부른다. 조선말엽에는 강양군 두상면에 속하였고 외곡마을과 같이 상상리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1940년경 외곡리에서 별도 행정리로 분리되었다.
    • 신촌(新村) : 신촌(新村)마을은 계림의 보림동마을과 인접하고 있으며 골짜기가 하도 협소하여 ‘홈내미’란 속명도 있다. 마을이 창건된 것은 약 260여년전인 조선 영조때 산청군 단성에 거주하던 김녕김씨 18세손 김덕항(金德恒)공이 진사에 등과하여 성균관에 유학 중 당시 어지러운 정국(政局)을 한탄하며 이곳으로 와서 자리잡게 되었다고 한다. 1980년 여름에는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하여 가옥 3동이 전파(全波)되고 주민4명이 사망하는 재난을 당하기도 하였다.
    • 평촌(坪村) : 평촌마을은 주변이 대체로 넓은 들로 형성되어 “들마”라고도 불리운다. 이곳에 마을이 창건된 것은 1760년경 성산이씨 27세손 광춘(光春)공이 넓고 비옥한 토지를 찾아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하며 지금도 마을 주민 대부분이 그의 후손들이다. 또한 밀양박씨들도 가구수는 얼마되지 않지만 거의 같은 시기부터 거주한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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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읍 민원담당 (☎ 055-930-5353)
최종수정일 :
2019.11.18 15:3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