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번역시스템을 이용하여 자동 번역중입니다. 번역이 정확하지 않을 경우가 있습니다.
It is under automatic translation using Google translation system. The result may not be accurate.


Today 합천 열기 닫음
수려한합천 Today
현재 시각 2024.05.04 (토) 오전 05:58
합천 트렌드
  • 준비중
합천 트렌드 바로 가기
# 오늘의 행사
  • 조회중
# 오늘의 소식
  • 조회중

인곡리

인곡마을

특징 및 자랑

인곡마을
  • 본동은 약 400여년전인 조선말 임란때 용주 허우산에서 란을 피하던 창원황씨 8세손인 夏中公께서 우산제를 넘어 지금의 인곡리 617번지 부근에 우거진 숲과 가시덩굴을 쳐내고 움막으로 거주를 시작하였다고 하며 얼마 뒤 서산정씨 14세손인 紹南公과 달성서씨 12세손인 省王公께서 들어와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고 한다.
  • 영하동은 본동 입구에서 약 2.7km나 떨어진 인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으며, 고지대에 주민이정착하게 된 것은 당시는 지금같이 교통이 발달하지 않고 모두 도보나 말(馬)을 이용할때라 봉산 권빈을 거쳐 거창, 한양을 왕래하는 많은 길손들이 쉬어가는 산속 교통 요충지였다.
  • 조선시대에는 장계리, 인곡리를 통털어 두상면의 杜里洞 또는 무릉으로 불렀다고 한다

마을이름 유래

  • 인곡(仁谷) : 인곡마을은 읍소재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마을로 인덕산 밑이라 하여 인곡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본동과 영하동 2개의 자연마을로 형성되어있다.
    • 인곡(本洞) : 약 400여년 전 조선말 임란 때 용주 허우산에서 난을 피하던 창원황씨8세손인 하중(夏中)공이 우산재를 넘어 이곳으로 와서 우거진 숲과 가시덤불을 쳐내고 움막으로 거주를 시작하였다고 하며 얼마 뒤 서산정씨 14세손인 소남(紹南)공과 달성서씨 12세손인 성옥(省玉)공이 들어와 마을 형태를 이루었다고 하며 지금도 그 후손들이 살고 있다.
    • 영하동(嶺下洞) : 영하동은 본동 입구에서 서북쪽 약 2.7㎞ 떨어진 인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으며 두리태 또는 재밑터라고도 부른다. 150여년 전 밀양손씨 40세손인 희우(希雨)공이 처음 이주하여 살았다고 한다. 이렇게 높은 지대에 정착하게 된 것은 당시 합천지역에서 거창이나 함양을 갈 때 지름길로서 많은 길손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곳이였다. 한때는 큰주막, 작은주막 등 주점이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관자마을

관자-갓골
관자-백자동
관자-샛담(신촌)

특징 및 자랑

  • 관자마을은 법정리상 인곡리에 속해있으며, 본동과 벽자동, 새터마을 등 3개 자연마을이 있다.
  • 본동은 광덕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갓골”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에는 인곡리 전체를 두상면 두릉(두리터)으로 부르기도 하였으며 본동앞 도로변에는 조선말엽 곡내 주민들이 이용하는 두릉장터가 있었다고 한다.
  • 벽자동은 약 350여년전인 조선 인조때 서산정씨들이 처음 들어와 살았다고 하며, 새터(신촌)마을은 훨씬 뒤인 1770년경 본동에 거주하던 진양강씨 23세손인 應周公께서 처음이주하여 마을을 이루었으며, 지금의 위치가 자손이 번창하고 부귀영화를 누릴터라하여 마을을 아루어 오늘에 이루고 있으며 본동 앞에는 삼백년이 넘는 정자 한그루가 있는데 이 나무는 칠원윤씨 26세손 할아버지가 심었다고 하며 “대자정”이란 별칭이 있다

마을이름 유래

  • 관자 : 관자마을은 인곡리에 속한 행정리로서 갓골, 샛담, 백자 등 3개의 자연마을로 형성되어있다
    • 갓골 : 관동 또는 본동으로도 불리워지며 마을 뒤에는 광덕산이 있다. 마을이 창건 된 것은 약 460여년 전 칠원 윤씨들이 처음 정착하였고 그 뒤 김해 김씨 17세손인 김시채공이 일가를 데리고 이주하면서 제법 큰 마을을 이루었다. 조선 말엽에는 인곡리 전체를 두상면 두리터 또는 두릉으로 불렀으며 마을 앞 도로변에는 당시 곡내 주민들이 이용하는 두릉장터가 있었다고 한다.
    • 샛담 : “새터”또는 “신촌”이라고도 부르며 1770년경 갓골에 거주하던 진주강씨 23세손인 응주(應周)공이 풍수지리설에 능하여 지금의 마을 위치가 자손이 번창하고 부귀영화를 누릴 터라하여 처음 이주하였으며 그 후손들이 단일성씨로 살고 있다.
    • 백자동 : “잣마무골”이라고도 하며 개울을 사이로 곡내에서 유일하게 서편을 바라보고 있다. 마을이 창건 된 것은 약 350여년 전 조선 인조 때 서산 정씨들이 처음 들어와 살게 되었으며 지금도 그 후손들이 대성으로 살고 있다

만족도 조사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시나요?

평가:

※ 참고로 만족도조사에 제출하신 의견은 홈페이지 운영의 참고자료로 활용하며, 답변이 필요한 민원이나 문의글은 전화문의, 군민의소리 등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담당자
합천읍 민원담당 (☎ 055-930-5353)
최종수정일 :
2020.03.11 15:2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