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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창리

영창마을

특징 및 자랑

영창마을
  • 조선시대 정부양곡보관창고가 있던 곳이라하여 『영창』으로 불렀다 고 하며, 마을에는 조선시대말 한학자이신 회당(光山金銖)선생께서 지방선비들을 가르치던 “창계서당”이 있으며, 지금까지도 매년 3월에 문하생과 지역 주민들이 모여 선생의 은덕을 기리는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 의원동은 창건연대는 알수 없으나 읍소재지와 가장 오래된 마을중 하나로 이조때는 옥산마을과함께 상삼리면의 행정 중심지였으며, 합천향교가 있던 곳이다. 이곳에 있던 합천향교는 1890년 에 야로면 구정리로 이건한 후 현재까지 그곳에 있다

마을이름 유래

  • 영창(盈倉) : 영창마을은 본동과 의원동 2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 본 동(本洞) : 이 마을은 보통 영창이라고 불려지며, 합천천을 사이에 두고 합천리(읍 소재지)와 바로 인접해 있다. 마을 창건 연대는 1600년대 말쯤으로 추정되며, 당초에는 마을 뒷골짜기 “생골”이라는 곳에 아주 오래 된 촌락이 있었는데, 마을 위치가 너무 높아 주민 생활이 불편하다 보니 자연 쇠퇴하고 이곳 본동으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영창”이란 마을 이름은 조선조 말엽에 마을앞 도로변에 정부 양곡 창고가 있었는데, 여기에 기인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마을에는 조선조 말 한학자인 회당(光山金銖)선생이 제자를 가르치던 창계서당(滄溪書堂)이 있다.
    • 의원동(宜院洞) : 이 마을은 본동에서 서북 방향에 접하고 있으며, 일부지역은 지대가 낮아 여름철이면 가끔 홍수 피해를 입기도 한다. 마을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읍 소재지와 같이 가장 오래된 마을중의 하나로 조선시대에는 옥산과 함께 상삼리면의 행정 중심지였으며, 합천향교(陜川鄕校)가 있던 곳이다. 이곳에 있던 향교는 1881년에 야로면 구정리로 이전한 후 현재까지 그곳에 있다

신소양마을

특징 및 자랑

신소양마을
  • 마을창건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문헌이나 산소등 정황으로 보아 신라말부터 마을이 있었 던 것은 확실하므로, 관내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중 하나로 보여진다.
  • 하동은 당초 지명이 소양(昭陽)으로 조선시대 전국 교통 요충지에 설치하였던 역(驛)이 한때 있던 곳이기도 하다

마을이름 유래

  • 신소양(新昭陽) : 상·하동 2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 상동(上洞, 윗마을) : 상동마을은 마을 창건 연대가 100여년 밖에 안되어 “새마” 또는 “신기”라고도 부른다. 당초 합천이씨 몇 가구가 살았는데, 이들은 마을 뒤 산 넘어 생골이라는 곳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마을에는 광산김씨 재실인 광암재와 합천이씨 재실인 강양재 및 망덕재가 있고, 마을 뒤 골짜기에는 수질이 좋은 약수터가 있어 많은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 하동(下洞, 아랫마을) : 예전에는 “구소양” 또는 “소양”으로 불리다가 한 때 “양정”이라고도 불리웠다. 마을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라말경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꽤 오래된 마을이다. 조선조 말 한 때는 역(驛)이 있었으나, 이곳에 있던 역을 금양으로 옮겼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광산김씨 재실인 육모재가 있고, 합천군 축협 양돈센터와 한전변전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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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읍 민원담당 (☎ 055-930-5353)
최종수정일 :
2019.11.18 15:27:30